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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day
  • Start:
    9:00 오전
  • End:
    12:00 오후
  • Venue:
    Seattle
  • Place:
    Sandy Beach Hotel
  • Entrance fee
    No charge
  • Early bird
    Free parking sp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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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속의 한반도와 이슬람

아랍 무슬림들이 한반도와 접촉한 최초의 시기는 기록상 9세기 중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슬람이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한 7세기 중엽부터 이미 아랍-페르시아계 무슬림들이 중국대륙과 접촉해왔고 그들의 활동영역이 9세기경에는 남방해로를 통해 통일신라시대의 한반도에까지 확정되었다.

이 시기의 이슬람의 영향을 시사해주는 구체적인 유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무슬림 상인들의 교역상품이나 이슬람 세계에서 도입된 것으로 추측되는 물품들이 신라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 점으로 미루어볼 때, 아랍 무슬림들의 직접적인 방한이나 또는 중국을 통한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한반도와 이슬람 세계간의 문화적인 접촉은 이미 통일신라시대부터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11세기 초인 고려시대에 ‘대식(大食)’으로 알려진 이슬람 제국의 아랍상인들이 100명 이상의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와서 간헐적으로 고려조정과 교역을 시도했다. 이어 이슬람 종교와 문화가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유입된 시기는 여말선초(麗末鮮初)인 13~14세기이다. 당시 몽골 원(元)제국의 간섭 하에 있던 고려조정에는 몽골관리들뿐만 아니라, 원제국의 행정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중앙아시아계의 무슬림들이 대거 진출했는데, 이들은 고려사 등에 ‘회회인(回回人)’으로 기술되어 있는 투르크계의 위구르 무슬림들이었다. 그들은 고려에 정착해 그들 나름대로의 종교, 민족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한국사회에 이슬람 문화를 이식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당시의 수도 개성을 중심으로 한 그들의 공동체내에는 이슬람 성원이 있었으며 그들 특유의 고유한 의상을 입고 자신들의 언어인 위구르어를 사용하는 등, 자신들만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했다.

이러한 이슬람적 특성은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념으로 출발한 조선 초기까지 영향을 끼쳤는데, 세종 재위기에는 궁중의 공식행사에 무슬림 대표나 종교지도자들이 초청되어 꾸란을 낭송하며 임금의 만수무강과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기도 했다. 이들 무슬림들이 이시기에 한반도에 정착하면서 끼친 이슬람 문화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그 중 이슬람 역법이나 도자기 기술의 도입이 대표적이다. 그밖에도 조선 초기의 다양한 과학기기의 발명과 과학서적의 편찬에도 이슬람 문화가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의 이슬람 영향력은 15세기 중엽 이후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걸었다. 이는 조선왕조의 새로운 건국이념인 유교사상의 유포와 부흥으로 이질문화가 배척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태는 20세기 초 개화의 물결로 인한 문호개방 시기까지 계속되었다.

그 후 일단의 무슬림들이 다시 한반도에 이주해 정착한 시기는 1920년대이다. 이들 대부분은 소련치하의 소수민족으로 살던 투르크계 무슬림들로서, 볼셰비키혁명 이후 삶의 터전을 잃고 만주를 거쳐, 당시 일제치하에 놓여있던 한반도에 망명해온 무슬림들이었다. 약200명정도로 추산되는 이들 투르크계 무슬림들은 주로 상업과 국제무역을 통해 부를 획득했으며, 서울시내 요지에 그들의 민족학교와 이슬람 성원을 건립했다. 또한 그들은 꾸란을 출판 배포하고 서울 근교에 이슬람 묘지를 확보하는 등, 근데 한국 이슬람의 태동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이들은 1945년 한반도의 해방과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한 정치적 급변 속에서 불안을 느끼고 대부분 해외로 이주해 갔다. 그러나 약 30년간 그들이 한반도에 심어놓은 이슬람의 씨앗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그들의 동족인 또 다른 터키인 무슬림들에 의해 전쟁의 참화 속에서 다시 발화되었다.

2. 1950년대
한국이슬람의 발아기
오늘날 한국무슬림 공동체가 형성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1950년의 외국 무슬림 군인들의 한국전쟁참전이었다.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다국적 군 중에는 이슬람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터키가 미국 다음으로 많은 여단규모의 병력을 파견했다. 그들은 전선에서 가장 용맹스러운 군대로 명성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후방에서는 ‘앙카라 학교’를 건립해, 전쟁고아의 양육과 교육에 헌신적인 모범을 보였다. 무슬림 군인들의 철저한 규율과 극한 상황 속에서의 인도적인 대민봉사는 터키군사령부 주둔지역의 한국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터키 군인들에 대한 이러한 관심과 애착은 그들 문화의 바탕인 이슬람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심으로 발전하였다.

이들 중 최초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시도한 사람은 당시 터키 제6여단 사령부의 군 이맘(Imam)이었던 “압둘 가푸르 카라이스마일오울루(Abdulgafur Karaismailoglu)”였는데, 그의 노력으로 한국 무슬림 제1세대가 형성되었다. 당시 윤리와 도덕이 말살된 전쟁의 참화속에서 뼈아픈 좌절을 경험한 한국의 지식인들은 새로운 가치체계의 확립과 정신적 안주를 간절히 희구했는데, 터키군인들의 이슬람 신앙에 바탕을 둔 윤리관과 도덕관, 그리고 인도주의는 한국인들을 감명시켰다. 그 결과 압둘라 김유도와 우마르 김진규등 최초의 한국 무슬림들이 탄생하게되었다.

1955년 9월 15일 김진규와 김유도는 “한국 이슬람 협회”를 결성하고, 한국인에 의한 최초의 이슬람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협회는 1955년 10월 터키 군 당국의 지원을 받아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에 야전용 천막 3동을 설치해 이를 임시성원과 사무실로 사용했으며, 매주 ‘압둘가푸르’이맘을 초청해 강연회를 여는 등 이슬람의 이해와 확산에 노력하였다. 그 이듬해인 1956년 4월에는 이슬람 협회 산하에 “청진학원”을 설립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불우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중등교육과 이슬람 교리교육을 무료로 실시했다. 이 학생들 중 일부가 이슬람에 귀의했는데, 당시 학원의 규모는 3학급 80여명이었다.

초창기 한국무슬림들의 이러한 활동은 1956년 ‘압둘 가푸르’의 뒤를 이어 20대의 젊은 이맘 ‘주베이르 코치(Zubeyr Koch)’가 여단 사령부 군 이맘으로 부임해오면서 더욱 활기를 띠었다. 의욕에 찬 ‘주베이르 코치’와 한국 무슬림들은 선교활동을 가속화하는 한편, 터키 여단 사령부의 지원으로 이문동에 임시성원을 마련하였다. 대형 콘센트 막사에 미나렛을 올려 만든 이 성원은 한국 이슬람 근대사에 최초의 임시 이슬람 성원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 역사적인 임시성원에는 ‘멘데레스’터키 수상을 비롯한 많은 이슬람 국가 지도자들이 다녀갔으며, 이 당시 입교자는 208명에 이르렀다.

2. 1960년대
한국 이슬람의 좌절과 재건기
한국 무슬림들은 1960년대에 들어와 조직적인 국내 선교활동에 참여하는 한편, 각 이슬람국가들과의 유대강화에도 적극성을 보이게 된다. 당시 이슬람협회 지도자인 우마르 김진규는 사브리 서정길을 대동하고 1959년 11월부터 약 1년간에 걸쳐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등의 이슬람 국가를 순방하며 한국 이슬람의 실정을 알리고 지원을 호소했다.

이들은 1960년 사우디 아라비아 순방 중, 성지순례에 참가함으로써 한국 무슬림 최초의 성지순례자가 되기도 했다.

이들의 이슬람 국가 순방결과, 1961년 9월 말레이지아 상원의원 우바이둘라(Ubaydullah)를 단장으로 한 14명의 말레이지아 사절단이 내방해 한국 이슬람의 실태를 직접 파악했으며, 1962년 2월에는 현 서울 중앙성원 원로 이맘인 술레이만 이행래를 비롯한 한국 무슬림 학생 11명을 6개월간 말레이지아 “클랑 이슬람대학”으로 초청해 체계적인 이슬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짧은 기간이나마 최초의 한국 무슬림 유학생으로 기록될 이 11명의 연수단에는 여학생도 3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후 1962년 11월 압둘 라작(Abdul Razzaq) 말레이지아 부수상 내외, 1963년 10월에는 하지 노아(Haji Noah) 말레이지아 국회의장이 내방해 한국 이슬람의 어려운 실정을 파악하고 귀국한 직후, 1963년 11월 말레이지아 수상 압둘 라흐만(Abdul Rahman)으로부터 성원 건립기금으로 말레이화 33,000불이 지원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이슬람교 협회”는 1964년 10월부터 서울 상도2동에 성원 건립용 부지를 확보하고 착공에 들어갔으나, 대규모 공사계획에 따른 후속 지원금 미확보와 누적된 부채로 인해, 한국 최초의 성원건립의 꿈이 무산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후 협회는 더욱 가중된 재정난으로 주요 업무가 마비되고 의욕을 상실한 무슬림들이 하나 둘씩 협회를 떠나 새로운 이슬람 단체를 조직했다.

군소 이슬람 단체로 분열되어 침체기를 맞고 있던 한국 이슬람교는 그 후 수 차례의 통합이 시도된 끝에, 1965년 4월 ‘한국 이슬람교 중앙연합회’를 발족시켰고, 이 연합회가 오늘날 한국 유일의 이슬람 조직체로 발전한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의 전신이다. 연합회는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 임시성원과 사무실을 마련하고 선교활동을 재개하는 한편, 해외 이슬람 단체들과의 유대강화에도 힘썼다.

한국이슬람의 대부로 추앙되는 파키스탄의 종교지도자 사이드 무함맏 자밀(Saiyd Muhammad Jamil) 파키스탄 “꾸란협회”회장이 내한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그는 1966년 10월 내한하여 약 40일간 한국에 체류하면서, 이슬람선교와 국내 무슬림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방한해 한국 이슬람 발전에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

성원건립의 필요성을 절감한 한국 무슬림들은 1967년 1월 하지 사브리 서정길 회장과 오스만 김용선 섭외부장을 약 7개월간 이슬람국가에 파견해 성원건립의 시급함을 호소했다. 이에 1967년 3월, 쿠웨이트 종교성 희사금 미화 14,000불을 포함해 전세계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성금이 답지했다. 같은 달 “한국 이슬람교 중앙연합회”는 문교부에 “재단법인 한국 이슬람교”법인 등록을 마침으로써 공인된 교단의 면모를 갖추었다.

술래이만 이화식을 비롯한 압둘 아지즈 김일조, 하지 사브리 서정길, 무함맏 윤두영, 유숩 윤형구, 오스만 김용선 등이 이 시기의 중견이사들로서, 한국 이슬람 현대사에서 한국 이슬람의 정착과 발전에 공헌한 무슬림 지도자들이다.

1967년 6월 격월간지 “코리아 이슬람 헤럴드”를 한글과 영문으로 발간해 한국 무슬림들의 활동을 전세계 이슬람국가에 홍보함과 동시에 예배근행과 선교활동의 구심점이 될 성원건립 사업에 전력했다. 1967년 10월, 임시성원과 사무실을 서울시 용산구 남영동으로 이전한 연합회는 교리강좌를 통해 무슬림 배가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파키스탄, 이집트 등의 이슬람 국가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무슬림 지도자를 양성했다. 동시에 이슬람 각국에 사절단을 보내, 본격적인 성원건립 추진사업을 전개했다.
3. 1970~80년대
한국 이슬람의 정착과 발전기
한국 무슬림들의 성원건립 소망은 1970년 9월 박정희 대통령이 용산구 한남동 소재 시유지 1,500평을 중앙성원 건립용 부지로 하사함으로써 더욱 구체화되었다.

1970년 12월 부지가 확보되자 중앙성원 건립을 위한 모금 사절단이 수 차례 이슬람 각국에 파견되었으며, 이슬람 각국도 이에 적극 호응해 모금액은 미화 40만불에 달했다. 마침내 1974년 10월 한국 무슬림들의 오랜 열망인 중앙성원 건립을 위한 첫 삽이 떠졌고, 2년후인 1976년 5월 21일 세계 17개 이슬람 국가로부터 장관 및 국회의원을 포함한 약 50여명의 종교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원 개원식이 거행됨으로써 한국 역사상 최초로 돔으로 된 이슬람 건축물이 이태원 언덕 꼭대기에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게 되었다. 한편, 개원기념 행사의 하나로 “소수 무슬림 국가에서의 이슬람 선교”라는 주제로 국제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한국 이슬람은 서울 중앙성원 건립을 계기로 안정된 선교기반을 마련했다. 더욱이 1970년대 초반부터 불어온 중동 이슬람 국가의 건설붐은 국내 이슬람 선교를 더욱 활성화 시켰다. 수많은 인력이 아랍-이슬람 국가로 진출함에 따라 이들에 대한 현지 문화교육과 이슬람 교육이 중앙성원에서 실시되었다. 그 결과 당시 약 3,700명이던 무슬림 수가 거의 배로 증가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중동 이슬람 국가들의 종교를 통한 유대관계도 한층 강화되었다.

1976년 6월에는 선교의 일환으로 중앙성원 이슬람 센터에 “아랍어 연수원”이 개설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리비아로부터 한국에 파견된 외국인 선교사들과 함께 무슬림과 비무슬림을 대상으로 아랍어와 이슬람 교리를 강의함으로써, 일반인들이 이슬람세계와 이슬람교리를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그해 7월에는 “무슬림이 되는길”을 제1호로 17종에 이르는 이슬람 선교용 책자가 한글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들은 이슬람 지식의 습득과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그 후 계속된 출판사업으로 수많은 이슬람 서적이 번역 출판되었을 뿐 아니라, 한국 무슬림 학자들에 의한 성 꾸란의 한글 번역본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한국 무슬림들의 선교활동을 국내외에 홍보하기 위해 “무슬림 주보”(주간)와 “알-이슬람(격월간)”이 발간되어 국내외에 배포되었다.

이러한 선교의 활성화와 함께 미래의 무슬림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전문적인 교육기관 설립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1977년 5월 쿠웨이트 실업가이며 “무슬림 대외원조 위원회”회장 압둘라 알리 무타와의 적극적인 제안과 지원에 따라, 우리나라에 이슬람 대학을 건립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모색되어, “이슬람 대학 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그 후 1979년 7월 사우디아라비아 내무장관인 나이프왕자가 본 회를 내방, 한국 이슬람 대학 건립 계획에 적극 찬성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대학건립 기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함으로써, 대학 건립 추진사업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2차 석유위기를 맞아 1979년 10월, 술레이만 이화식 이사장을 단장으로 한 순례사절단이 사우디아라비아 종교계 인사를 접촉해 한국에 석유공급을 호소했고 교단의 끈질긴 노력에 부응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한국에 원유를 특별 공급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어 1980년 5월에는 최규하 대통령이 사우디 아라비아를 방문해 양국 공동성명에 한국 이슬람대학 설립을 합의했고, 이에 따라 경기도 용인에 13만평에 달하는 대학부지가 확보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1982년 3월에 대학 설립을 추진하기 위한 “한국-사우디 아라비아 공동위원회”가 정부차원에서 조직되어 구체적인 대학설립이 논의되었다. 동년 12월 3일과 6일에는 “한-사 공동위원회”가 개최되어 대학설립 및 운영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안건이 협의되었는데 대학 건립비와 운영비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지원키로 합의했다.

한편, 한국이슬람교 연합회 산하에는 1977년 9월부터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 학생회”가 자율적으로 조직되어 학생층을 대상으로 한 선교활동이 시작되었다. 학생회는 매주 3~4회의 교리연구 발표회를 통해 회원들의 이슬람 지식 함양은 물론, 각 대학에서 순회강연을 통해 이슬람의 보급에도 힘썼다. 또한 학생회는 연합회 및 주한 이슬람국 대사관들의 지원을 받아 매년 서울 시내 중심가에서 “이슬람 문화 전시회”를 개최함으로써 일반인들에게 이슬람과 아랍의 문화를 소개함과 동시에 이슬람을 바르게 인식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학생회의 이러한 활발한 선교활동은 이슬람 각국에도 알려져, 해외에서 개최되는 각종 청년 무슬림 회의나 캠프는 한국 무슬림 대표들이 초청되기도 했다. 1983년부터는 “세계 무슬림 청년협의회(WAMY, World Assembly of Muslim Youth)”의 지원으로 매년 한국에서 WAMY캠프가 개최되었다. 이 캠프를 통해 무슬림 학생들간에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이슬람 생활화의 실천, 그리고 무슬림 석학들의 초청 강연을 통한 이슬람 지식의 향상을 꾀했다. 또한 많은 수의 학생회원들이 이슬람 국가의 장학생으로 초청되어 유학함으로써 많은 무슬림 인재가 양성되었다.

1970년대 중반 중동 붐을 타고 해외로 진출한 한국인 기술자들이 이슬람교에 지대한 관심을 가짐으로써 이들에 대한 선교활동을 절감한 연합회는 1978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업가 쉐이크 우마르의 지원으로 젯다에 이슬람 센터 겸 지회를 설치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된 한국인 기술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편 결과 입교자가 8,000여명에 이르렀다. 또한 1979년 7월에는 쿠웨이트 종교성의 배려로 자하라 삼호주택 캠프내에 한국인 전용성원과 지회가 설립되어, 술레이만 이행래 지회장의 노력으로 쿠웨이트 전역의 한국인을 대상으로 이슬람 교육을 실시했다. 그 결과 1984년 6월까지 약 3,000명이 이슬람교에 입교했으며, 1982년에는 인도네시아에도 지회가 설치되어 한국인 교포 선교 및 유학생 교류에 일익을 담당했다.

1976년 서울 중앙성원 개원을 계기로 한국에서의 이슬람은 지방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1976년말에는 압둘라힘 김명환을 중심으로 한 부산지역 무슬림들이 시내에 임시 예배실을 설치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1978년 4월에는 경기도 쌍용리 마을 주민들이 압둘라 전득린의 인도로 다수가 이슬람에 귀의해 비닐 하우스로 임시 예배실을 마련하고 성실한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농촌지역 선교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기도 했다.

또한 1986년에는 압둘라쉬드 엽보섭을 중심으로 전주지역에도 이슬람의 씨앗이 뿌려져 지방선교에 일익을 담당했다. 한국에서의 이슬람의 확산은 이슬람 각국의 관심을 불러모아 리비아, 쿠웨이트, 이집트의 독지가들의 지원으로 이들 지역에 성원이 건립되었다. 또한 1986년 4월에는 후세인 유창식이 사재로 기독교 교회를 매입해 이를 이슬람 성원으로 개조함으로써 서울 근교 안양에서의 선교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어 울산과 제주에도 임시 예배실이 설치되어 지역 선교 활성화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4. 1990년대 이후
한국 이슬람 사회의 세대교체와 새로운 도약기

1990년대부터 한국 무슬림 사회는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갖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한국 무슬림 사회를 이끌어 왔던 무함마드 윤두영, 사브리 서정길, 유수프 윤형구 등, 원로 무슬림 지도자들이 1980년대에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1세대 원로 무슬림들의 갑작스러운 공백으로 인해 한국 무슬림 공동체는 잠시 혼란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그 동안 중동-이슬람 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2세대 무슬림들이 그 공백을 메우며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이루어 진 것이다. 2세대 무슬림 지도자들은 종교적 열정 뿐 아니라 오랜 이슬람권 국가에서의 유학경험과 이슬람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선교방향을 모색해 나갔다.

1990년대 이후 가장 두드러진 선교활동은 이슬람 교육 및 연구활동이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서울 중앙성원 회의실에서는 국내외 무슬림 학자들이 모인 가운데 이슬람 세미나 및 강연회가 수시로 개최되었다. 이와 같은 학문 활동은 1997년 8월에 개최된 대규모의 국제 이슬람 세미나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세계 무슬림 연맹(Rabita)”과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의 재정지원으로 개최된 이 세미나에서는 외국 무슬림 학자 20여명을 포함한 100여명의 국내외 이슬람 학자들이 모여 “동아시아의 이슬람-역사와 문화적 조화”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편 이 세미나와 함께 “한국 이슬람 문화연구소(KIIC)”의 개원식도 함께 갖게 되었다. 오랫동안 이슬람 권 국가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소장 무슬림 학자들로 구성된 이슬람 문화 연구소는 이슬람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바로 잡고 정확한 이슬람 지식을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수시로 강연회 개최 및 이슬람 서적 출판에 주력했다. 특히 1998년 12월부터 사우디 아라비아 “이끄라 재단”의 후원으로 매월 첫째 토요일에 서울 중앙성원 소강의실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토요 이슬람 문화강좌”를 개최했다. 또한 연구소 소속 학자 12명은 2001년 “이슬람”이라는 이름의 공동저서를 출판했는데, 이 책은 때마침 발발한 9.11 테러사건 이후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수개월간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그 동안 적은 수이지만 순수한 한국 무슬림들로 꾸준한 성장을 계속해 오던 한국 무슬림 사회는 1990년대에 들어와 새로운 분위기를 접하게 되었다.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외국 근로자들 대부분이 이슬람 국가 출신이어서, 이들을 포함한 국내에서의 무슬림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전국적으로 외국 무슬림 근로자들의 수는 10만 명이 넘어, 서울, 부산, 전주, 경기도 광주 및 안양에 있는 5개의 마스지드는 이들로 인해 항상 북적거렸고 금요 합동예배에는 예배 공간이 부족해 건물 밖의 마당까지 꽉 차게 되었다. 이들 외국 무슬림 지도자들의 대부분은 안산, 안양, 광주, 파주, 김포, 의정부 등 서울 근교의 공단에 집중적으로 거주했다. 마스지드가 존재하고 있는 안양과 광주지역은 특별한 어려움이 없었지만 그 밖의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 무슬림 근로자들에게는 예배장소의 마련이 시급한 문제였다. 따라서 각 지역의 무슬림 근로자들은 자발적으로 모금활동을 벌여 예배소(무쌀라) 및 이슬람 센터 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도 이들의 눈물겨운 노력에 동참해 법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파주 마스지드, 안산 이슬람 센터, 포천 송우리 이슬람 센터 등 전국에 약 60여 개의 외국 무슬림 근로자들을 위한 예배소 및 이슬람 센터가 건립되었다.

한국 무슬림 사회가 형성된 후 끊임없이 이어진 외국 무슬림 지도자들의 방문과 지원은 1990년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1998년 10월 국무총리의 초청으로 내한한 압둘라 이븐 압둘 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현 사우디 아라비아 국왕)는 방한 중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 대표들을 면담한 자리에서 한국 내 성원들의 보수 및 환경미화를 위한 기금으로 미화 50만 불을 희사했다. 이 기금은 전국 4개 마스지드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 및 환경미화 공사로 사용되었다.

또한 술탄 이븐 압둘 아지즈 사우디 아라비아 왕자도 2000년 10월 서울 중앙성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무슬림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며 마드라사 설립기금으로 미화 30만 불을 희사했다. “술탄 마드라사(Prince Sultan Islamic School)”라는 이름으로 2001년 10월에 개교한 이 학교에서는 방과후에 무슬림 어린이들에게 이슬람과 아랍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 시기에 이룩한 또 하나의 선교사업은 무슬림 공동묘지 설립이다. 매장을 원칙으로 하는 이슬람법의 장례규칙에 따라 한국 무슬림 사회도 무슬림 공동묘지의 마련이 무엇보다도 시급했다. 1970년대부터 무슬림 공동묘지를 설립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재정문제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하던 중, 2002년에 부임한 주한 카타르 대사 압둘 라작 압둘 가니가 이 문제 해결에 발벗고 나섰다. 그 결과 카타르 정부의 설립기금 50만불 지원으로 2004년 8월 충청북도 충주시 양성면 소재 진달래 공동묘지 내에 3,800㎡의 대지를 구입하고 무슬림 공동묘지를 조성했다.

한국 이슬람이 이 땅에 뿌리 내린 지 반세기가 지난 2005년 현재, 한국에는 9개의 이슬람 성원과 60여 개의 임시 예배소가 있고 이곳을 중심으로 외국 무슬림을 포함해 약 15만 명의 무슬림들이 종교생활을 하면서 알라의 복음에 충실하고 있다.

1955

유엔군의 일원으로 6.25 한국동란에 참전한 터키군 이맘 “압둘 가푸르 카라이스마일오울루”에 의해 최초로 한국에 이슬람 전래됨

1955.09

우마르 김진규를 비롯한 초창기 한국 무슬림들에 의해 “한국 이슬람교 협회”가 결성됨

1955.10

터키 군 당국의 지원으로 청량리 이문동 사유지 250평에 야전용 천막 3동 설치, 임시 예배실과 사무실 설치

1956.04

야전용 천막에 “청진학원”개설. 불우청소년들에게 중등교육과 이슬람 교리교육 실시

1956.07

압둘 가푸르의 뒤를 이어 “쥬베이르 코치”군 이맘으로 부임. 터키 군당국의 지원으로 이문동에 대형 콘세트 막사로 임시성원 설치

1958.04

“멘데레스”터키 수상 임시 성원 방문

1959.11

“우마르 김진규”, “사브리 서정길” 1년간 이슬람국가 순방, 한국이슬람 현황 소개.
1960년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중, 한국인 최초로 성지순례 근행

1961.09

“우바이둘라”를 단장으로 한 말레이지아 상원의원 사절단 14명, 한국이슬람 현황 파악차 내한

1962.03

3명의 여학생 포함한 한국 무슬림 학생 11명 말레이지아의 “클랑 이슬람대학”에서 6개월간 이슬람연수

1962.11

말레이지아 부수상 “압둘 라작”부부 내방

1963.10

말레이지아 국회의장 “하지 노아”내방, 한국이슬람 지원약속

1963.11

말레이지아 수상 “퉁쿠 압둘 라흐만” 성원건립 기금으로 말레이화 33,000불 희사

1964.10

“한국 이슬람교 협회” 서울시 영등포구 상도동에 성원 신축부지 확보. 성원건립 착공, 계획 차질로 성원건립 실패

1965.04

군소 이슬람 단체 통합 “한국이슬람교 중앙 연합회” 발족(회장-사브리 서정길, 사무총장-술레이만 이화식)

1966.04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3가 250번지 2층을 임차. 임시 예배실과 사무실로 사용

1966.10

파키스탄 “꾸란 협회”회장 “사이드 무함마드 자밀”박사 내방, 40일간 체류하면서 선교활동(자밀박사는 그후 6차례 더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 무슬림들을 지도하고 이슬람 세계에 한국이슬람 선교의 가능성을 인식시키는데 크게 기여)

1967.01

“사브리 서정길”회장과 “오스만 김용선”섭외부장, 약 7개월간 이슬람 각국 순방, 한국 이슬람현황 소개 및 성원 건립의 필요성 호소

1967.03

쿠웨이트 종교성, 성원 건립기금으로 미화 14,000불 희사

1967.03

문교부 장관 인가로 “재단법인 한국 이슬람교”발족, 이슬람 관계 재산관리 체제를 갖추고 성원건립기금 확보에 주력

1967.06

격월간지 “코리아 이슬람 헤럴드” 발간

1967.10

사무실과 임시 예배실을 용산구 남영동 62번지 “신생가구” 2층으로 이전

1970.09

박정희 대통령, 용산구 한남동 소재 시유지 1,500평을 성원건립 부지로 하사

1970.10

남영동으로부터 임시성원과 사무실을 한남동으로 이전

1971.09

한국 무슬림대표 6명, 일본을 공식 방문중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화이잘”국왕을 일본 동경에서 알현하고 한국 이슬람 및 성원건립 기금 지원 요청

1973.03

“사브리 서정길”회장과 “압둘 아지즈 김일조”사무총장, 성원건립 기금 모금차 이슬람국가 순방

1973.12

“무함마드 윤두영”이맘을 대표로 성지순례단, 이슬람국을 순방, 성원건립기금 요청

1974.06

리비아의 “이슬람 선교회의”선교위원으로 파키스탄인 “파즈룰 까디르 시디끼”와 “모히불 학 아리프”형제 파견

 

1974.10

싱가폴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 “다토 알-사고프”를 비롯한 이슬람 각국 지도자들의 적극 지원으로 서울 중앙성원 및 이슬람센터 기공식 거행

1976.05

전세계 이슬람 국가 지도자 51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중앙성원 및 이슬람센터 개원식 거행. 개원식 행사의 일환으로 “소수 무슬림 국가에서의 이슬람 선교”라는 주제로 국제 이슬람 세미나 개최

1976.06

서울 중앙성원 이슬람센터내에 “아랍어 연수원”개설

1976.06

세계적인 복싱 챔피언 “무함마드 알리” 서울 중앙성원 내방

1976.07

선교용 책자 발간 착수. “무슬림이 되는 길”을 1호로 17종의 선교용 소책자를 발간. 국내 무슬림 및 비무슬림들에게 무료로 배포

1976.08

매년 라마단 성월(단식월)에 ‘따라위’특별예배를 위한 이맘과 꾸란 독경사 각 1명. 카타르 종교성에서 파견

1976.12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에 3백여명의 무슬림들이 규합, 임시성원 개설

1977.05

쿠웨이트의 “대외원조위원회”회장 “압둘라 알리 알-무타와”내방. 한국 이슬람 대학 설립 추진 합의

1977.05

사우디 아라비아의 다룰 이프타. 선교위원으로 인도인 “쉐이크 사이드”형제 파견

1977.09

중앙 연합회 산하의 대학생 무슬림들이 자율적으로 무슬림 학생회 조직

1977.10

무슬림 자녀들의 이슬람 교육을 위한 “일요학교” 개설

1977.11

청년무슬림들의 심신단련을 위한 “무슬림 태권도장”개장

1978.03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한 한국 근로자 대상 선교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복지기구 선교담당 “쉐이크 우마르”의 지원으로 젯다에 이슬람 센터 및 사우디아라비아 지회설치(지회장-이브라힘 전기정)

1978.04

“유수프 윤형구”이사장, “무함마드 김무창”사무총장, “사이드 마라카르”로 구성된 종교사절단, 이슬람 대학 설립기금 모금차 사우디아라비아 순방
1978.11

“유수프 윤형구”이사장을 단장으로 한 132명, 사우디 아라비아 성지순례
1978.12

경기도 광주에 비닐하우스로 임시성원을 개설, 농촌 주민을 대상으로 선교활동 개시
1979.03

쿠웨이트의 자하라 삼호주택 캠프내에 한국 무슬림 전용 성원 건립, 현지 교포대상으로 선교활동 시작
1979.03

한국 무슬림 학생회, 제1회 “이슬람 문화전시회”개최
1979.03

“한국 이슬람교 협회”초대 회장이었던 “우마르 김진규”별세, 한국 최초로 이슬람식 장례식 거행
1979.07

사우디아라비아 내무상 나이프왕자의 한국공식 방문시, 한국정부에 이슬람 대학설립을 위한 상호지원 제의와 동시에 대학 건립 기금으로 미화 3만불 희사
1979.07

쿠웨이트 지회설립, 지회장으로 “술레이만 이행래”사무차장 파견
1979.09

리비아의 전 재무상 “알리 휄락”박사의 건립기금으로 부산성원 기공식
1979.10

“술레이만 이화식”이사장을 단장으로 한 104명의 성지순례단, 사우디아라비아 성지순례
1979.11

“사브리 서정길”, “압둘 아지즈 김일조”, “아부 바크르 김종순”, 종교 사절단으로 이슬람 각국 순방
1980.02

“술레이만 이화식” 이사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 이란 혁명 1주년 기념식 참석
1980.04

쿠웨이트 종교성 차관 “무함마드 나시르”, “무함마드 이브라힘 알-사가피”판사등의 주선과 쿠웨이트 ㄷ독지가 “압둘 아지즈 압둘라 알-라이스”의 성원건립기금 지원으로 경기도 광주성원 기공식 거행
1980.05

최규하 전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공식 방문시 한국이슬람 대학건립 지원 약속

1980.07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경기도 용인에 국유지 430,000㎡(13만평)을 이슬람 대학 부지로 확보

 

1980.08

“무함마드 윤두영”이맘 단장의 한국대표단, 리비아에서 개최된 “이슬람 선교회의”총회참석
1980.09

세계 이슬람 각국 대표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성원 준공식과 이슬람 대학 기공식 거행

1981.01

리비아 “이슬람 선교회의” 태국인 선교위원 “무스파타”와 “압둘 가니”파견

1981.06

카타르 보이스카웃 단원 25명, 서오릉 보이스카웃 훈련원에서 한국무슬림 학생 회원들과 한 달간 합동캠프 개최

1981.06

세계 각국 무슬림 지도자 21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도 광주성원 개원식 거행

1981.11

세계 무슬림 석학 초청 강연회 개최(강사-쿠르쉬드 아흐마드’파키스탄’, 마흐디 아부드’모로코’, 이스마일 알-화루끼’미국’)

1982.02

리비아 ‘이슬람 선교회의’ 태국인 선교위원 ‘압둘 라흐만’과 ‘압둘 라쉬드’파견

1982.03

한국 이슬람 대학 설립을 위한 한국-사우디 공동위원회 조직

1982.06

중앙성원 이슬람센터내에 무슬림 정육점 개설. 한국 및 외국 무슬림들에게 이슬람교리에 따른 “할랄”정육 공급

1982.06

인도네시아 지회설립

1982.12

이슬람 대학 설립을 위한 한국-사우디 공동위원회, 2회(12/3, 12/6)에 걸쳐 회의개최

1983.04

경기도 용인 이슬람 대학부지에서 제1회 “무슬림 움마 수련대회”개최

1983.08

“와미”(세계 무슬림 청년 협의회)의 후원으로 한국, 대만, 일본, 홍콩에서 약 100여명의 청년 무슬림들이 참가한 가운데, 동아시아지역 국제 캠프 개최

1984.08

“와미”의 지원으로 제1회 와미 국내 캠프 개최

1985.02

서울 중앙성원 이맘 “무함마드 윤두영”별세. 이슬람식 장례식 거행

 

1985.05

“지아울 학” 파키스탄 대통령 서울 중앙성원 내방

1985.06

“이르샤드”방글라데쉬 대통령 서울 중앙성원 내방

1985.08

제2회 와미 국내 무슬림 캠프 실시

1986.04

안양 “라비타”성원 개원식

1986.07

“이슬람 회의기구(OIC)사무총장, 한국 이슬람 현황 파악차 내방

1986.08

제3회 와미 국내 캠프 개회

1986.08

“아시안 게임”선수촌내에 임시성원 개원

1986.11

전주 “아부 바크르 앗-시디끼”성원 개원식 거행. 이슬람이 한국에 전파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던 “주베이르 코치”이맘이 30년 만에 한국을 방문. 전주성원 개원식에 참석

1987.08

제4회 와미 국내 무슬림 캠프 개최

1988.05

“무함마드 칸 쥬네조”파키스탄 수상, 서울 중앙성원 내방. 선교기금으로 미화 20,000불 희사

1988.08

제5회 와미 국내 무슬림 캠프 개최

1988.09

“서울 올림픽”선수촌내에 임시성원 개원

1989.07

제6회 와미 국내 캠프 개최

1989.09

“이슬람 역사 바로잡기”의 일환으로 제1회 서울지역 중,고교 역사담당 초청이슬람 강연회 개최

1990.10

서울 중앙성원 이슬람센터 3층 증축 착공식 거행

1991.08

“라비타”사무총장 “압둘라 나시프”중앙성원 내방

1991.11

“세계 무슬림 학생연합회”(IIFSO)사무총장 “아흐마드 토톤지”박사의 지원으로 매월 첫째-세째주 토요일 “하룻밤 집회”개최

1992.01

선교위원회 주최로 “할까 모임”구성. 매월 둘째-네째주 토요일 꾸란과 이슬람 교리공부

1993.06

서울 중앙성원 이슬람센터 3층 증축 준공식과 “마드라사”개설

1994.06

서울 중앙성원 개원 18주년을 기념하는 이슬람 세미나가 “이슬람과 한국 그리고 세계”라는 주제로 이슬람 중앙성원 회의실에서 개최

1995.04

주한 인도네시아인 협회의 지원으로 2명의 이슬람서예가 내한. 중앙성원 내부 및 외부전면을 장식

1995.11

“이슬람과 평화”라는 주제로 서울 중앙성원 회의실에서 이슬람 세미나 개최

1995.11

“이슬람과 다른이념”이라는 주제로 서울 중앙성원 회의실에서 이슬람 세미나 개최

1997.08 세계 무슬림 연맹(Rabita)의 후원으로 약20여명의 외국 무슬림 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동아시아의 이슬람-역사와 문화적 조화”라는 주제로 국제 이슬람 세미나개최
1997.08 한국 무슬림 소장학자들로 구성된 한국 이슬람 문화연구소(KIIC) 개원
1998.04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의 선교활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주한 이슬람권 국가 21개국의 대사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 발족
1998.07 “압둘 할림” 이스마일 태국 외무부 장관 서울 중앙성원방문
1998.08 1989년 이후 중단되었던 와미 국내 무슬림 캠프 재개(통산 제7차) 이후 현재까지 매년 개최
1998.10 김종필 국무총리 초청으로 방한한 “압둘라 이븐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현 국왕),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 대표들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미화 50만불 지원
1998.12 한국 이슬람 문화연구소(KIIC),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끄라 재단후원으로 매주 첫째 토요일 “토요 이슬람 문화강좌”실시
2000.03 사우디 아라비아 리야드 주지사 “살만 이븐 압둘 아지즈”왕자 서울 중앙성원 방문
2000.11 사우디아라비아 국방장관 “술탄 이븐 압둘아지즈”왕자 중앙성원 방문, 마드라사 설립 기금으로 미화 30만불 희사
2001.09 중국 이슬람 협회와 상호 교차 방문 합의에 따라 중국대표 5인 방문단 내한
2001.10 서울 중앙성원 이슬람 센터 내 술탄 마드라사개교
2002.02 사우디아라비아 종교성 장관 “살레 압둘 아지즈”, 중앙성원 및 한국 이슬람 대학 부지 방문
2002.05 중국 베이징 이슬람 협회 초청으로 본회 5인 방문단 중국방문
2002.06 한국 이슬람교 제주센터 개원
2002.08 하기 WAMY 캠프를 제주에서 개최
2002.11 안산 이슬람 선교센터 개원
2003.05 와미의 지원으로 제1회 여성 무슬림 캠프 개최
2003.07 타종단 지도자들 종교간의 우애 증진을 위해 서울 중앙성원 방문
2004.07 무슬림 신도회 조직, 창립총회
2004.07 카타르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충북 충주시 양성면의 부지(3800㎡)에 무슬림 공동묘지 설치
2004.05 김포 이슬람 선교센터 건물 매입
2004.10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 부평 성원 개원
2005.02 기존의 방글라데쉬 무슬림 근로자들에 의해 운영되던 파주 성원,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로 귀속
2005.03 전남 광주 이슬람 센터 개원
2005.07 거여-마천 이슬람 센터 개원
2005.08 하지 WAMY 캠프 개최(춘천시 남면 방하리, 기하 유스호스텔)
2005.10 한국 이슬람 전교 50주년 기념 리셉션(국회의원 후원, 소공동 롯데호텔)
2005.11 포천 송우리 이슬람 센터 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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