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역사 History of Islam

이슬람의 역사

1. 이슬람은 세계인구의 1/5의 종교

이슬람은 기독교, 불교와 더불어 세계의 3대 종교로 꼽히지만 유독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유대교가 유대인의 종교인 것처럼 이슬람을 마치 아랍인들의 종교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이슬람은 전세계 인구의 1/5이 넘는 13억 명의 신도를 가진 세계적 종교이다.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muslim)들은 140여 개 국가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 중 아랍연맹에 속해 있는 22개국(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요르단,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레이트, 오만, 예멘, 이집트, 수단,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모리타니, 지부티, 소말리아, 코모로)를 포함하여 이슬람 회의기구(Organization of the Islamic Conference)에 가입되어 있는 회원국가만 해도 57개국(약 8억명 이상, 아랍연맹 22개국과 아프가니스탄, 알바니아, 아제르바이잔, 방글라데시 베냉, 브루나이, 부르키나파소, 카메룬, 차드, 가봉, 잠비아, 기니, 기니비사우, 가이아나, 인도네시아, 이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말레이지아, 몰디브, 말리, 모잠비크, 니제르,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세네갈, 시에라리온, 수리남, 타지키스탄, 토고, 터키, 투르크메니스탄, 우간다, 우즈베키스탄, 코트디부아르)에 달한다. 이 국가들이 현대세계에서 이슬람 문화권, 즉 무슬림 움마(ummah,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그 범위는 서아시아를 중심으로 하여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동남아시아까지,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북서부의 끝까지 이른다. 이 지역은 이슬람역사에서 아랍어로 다르 알 이슬람(이슬람 영역)이라고 불려온 지역으로 오늘날의 이슬람 세계 또는 이슬람 권을 말한다. 무슬림 수가 가장 많은 국가는 인도네시아이고(약 1억 8천만명), 지역적으로는 인도반도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다.(파키스탄 약 1억 4천만명, 인도 약 1억명, 방글라데시 약 1억 1천만명), 아랍인 무슬림 수는 약 3억명이고 터키(약 6천 3백만명), 이란(약 6천 5백만명), 이집트(약 5천 9백만명), 나이지리아(약 7천만명) 등 무슬림 인구가 5천만명 이상 되는 국가도 상당수 있다. 우리의 이웃인 중국에도 약 4천만명 가량의 무슬림이 있다. 유럽에서 이슬람은 두번째로 신도수가 많은 종교이다. 약 1천 7백만명의 무슬림(프랑스 4백만명, 영국 4백만명, 독일 250만명 등)이 있으며, 미국에도 약 8백만명이 넘는 무슬림들이 살고 있다. 이슬람(세계인구의 22%)은 기독교(세계인구의 33%)다음으로 신도수가 많은 종교이고, 기독교를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나누어 볼 때에는 무슬림 수가 세계 1위이다.

2. 하나님만을 믿는 유일신교

이슬람은 하나님을 믿는 종교다. 유대교가 모세의 5경(토라 Torah)을 토대로 했고, 기독교가 예수의 복음서를 중심으로 교회를 세웠듯이 이슬람은 무함마드의 “꾸란”을 통해 하나님인 ‘알라’에게 귀의하는 종교이다. 이 세 종교는 같은 하나님을 믿는 일신교이다. 모두가 만물의 창조자, 부양자, 우주질서의 주관자, 지배자, 전지전능의 절대자, 최후 심판의 날의 주인이신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다. 야훼(여호와)는 히브리어이고, 알라는 아랍어이며, 하나님은 우리말이다. 예컨대 아랍의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신을 부를 때 ‘알라’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처럼 ‘알라 하나님’이라는 말은 가능하겠지만, 여러 신들 중 “알라신을 믿는다”라는 의미로 알라신을 지칭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슬람교도들은 하나님외에는 다른 신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신과 하나님을 동렬에 두는 것은 죄중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가장 큰 죄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이슬람은 오직 ‘알라’만을 믿는 유일신 교리의 종교로서 신성에 관해서는 어떠한 복수적 개념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기독교의 삼위일체론 같은 교리는 즉각 배격한다. 그 때문에 무슬림들은 그들이 가장 훌륭한 일신교도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산다.
“꾸란”에서는 알라가 유대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신과 동일한 ‘하나님’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이슬람교인들은 신에 대해 말씀할 때 그 신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모세의 하나님, 예수의 하나님, 무함마드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관한 “꾸란”성구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우리에게 계시된 것과 너희에게 게시된 것을 믿는다. 우리의 하나님과 너희의 하나님은 한 분 이시며 우리는 그 분께 복종하는 자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너희’는 성서를 가진 백성들로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지칭한다. 그리고 이 성구끝의 ‘복종하는 자’가 원어대로 발음할 때 무슬림(muslim)인데, 이 단어가 바로 이슬람교인을 가리키는 아랍어이다.

서구에서 잘못 표현했던 영향으로 종종 이슬람을 마호메드(무함마드)교(Mohammedanism)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무슬림들은 무함마드를 신봉하지 않는다.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이 땅에 전한 신의 사자(使者)로서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를 이은 예언자일뿐이다. “꾸란”에서는 무함마드가 철저히 인간임을 강조한다. 무슬림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뜻에 절대 복종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교인들을 무슬림(복종하는 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세계적인 종교의 이름이 그 종교의 창시자(불교, 기독교, 조로아스터교)나 지역 또는 인종(유대교, 힌두교)를 바탕으로 지어졌지만, 이슬람은 아랍어로 순종(복종)과 평화라는 뜻에서 이름이 지어졌다. 세계 만물의 창조주인 하나님에게 절대 순종함으로써 육체와 정신에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종교적 함의를 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슬람교는 하나님의 의지(뜻)에 무조건 복종하는 종교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회교(回敎)라고 지칭하는 사례가 종종 있는데 이것도 잘못된 것이다.

또 무슬림은 하나님이 이 땅에 예언자들을 보냈다고 믿는다. 인류의 조상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 모든 신의 사자와 예언자들의 존재, 그들의 사명과 역할을 믿는 것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들인 아브라함과 모세, 다윗, 야곱, 요셉은 물론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수와 세례자 요한까지 예언자들 모두를 믿는다. “꾸란”에 등장하는 25명의 예언자중 21명이 기독교 성서에 나타난 동일인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속성인 자유의지로 인해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을 그대로 따르지 못하고 원래의 가르침에서 일탈하거나 왜곡된 길을 걷게 마련이다. 이때 하나님은 새로운 예언자를 보내서 원래 하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다시 일깨워준다. 무슬림은 이러한 마지막 예언자가 무함마드라고 믿는다. 또 무슬림은 천사의 존재와 천국과 지옥을 믿으며 최후 심판의 날이 도래할 것임을 믿는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토라(Torah, 모세 5경)와 다윗의 ‘시편’, 예수의 복음서, “꾸란”으로 인류에게 계시되었음을 믿는다. “꾸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마리아의 아들 예수로 하여금 토라에서 그 이전에 계시된 것을 확증하고 그들(예언자들)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했으며 또한 토라에서 그 이전에 계시된 것을 확증하면서 인도와 광명이 담겨있는 복음서를 그에게 내려주셨나니, 이는 신을 경외하는 자들을 위한 훈계요 인도서이니라.”

이 성구를 통해 예수의 중요한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졌다. 그것은 모세에게 내려졌던 토라의 내용을 확증하고, 새로운 복음서를 이 땅에 가져와 인류에게 신의 뜻이 무엇인지를 전달하는 일이었다.
기독교인들이 그들에게 내려진 “신약성서”의 계시가 그 이전에 내려진 “구약성서”의 계시를 확증하는 것이고 동시에 완벽하게 채워주는 것으로 보고 있듯이, 무슬림은 앞서 내려진 경전들속에 계시된 것들을 확증하고, 또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앙체계에서 후대인들이 인위적으로 첨삭했거나 왜곡한 것들을 순화시키고 올바르게 하며 때로는 그것을 보완하여 완벽한 것으로 바로잡기 위해서 “꾸란”이 내려왔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신으로부터 받은 계시서인 “꾸란”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종합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무슬림은 이슬람이 새로운 계시, 새로운 경전을 가진 새로운 종교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태초부터 존재해온 유일신 종교의 마지막 완성된 체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아담의 하나님, 노아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모세, 예수의 하나님, 무함마드의 하나님에 전혀 구별이 없다. 똑 같은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 해주는 “꾸란”의 성구들은 무수히 많다.

“우리(하나님)는 그 이전에 성경(인질)에 계시된 것을 확증하고, 성경을 수호하는 진리가 담긴 성서(“꾸란”)을 너(무함마드)에게 내려주노니…..”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명하셨던 종교를 규정하셨나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너(무함마드)에게 계시해주신 것이고 또 그분께서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에게도 그 종교를 지키고 그 안에서 분열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니라…..”

이와 같이 무슬림의 관점에서 유대교인과 기독교인은 ‘성서의 백성들’로, 하나님으로부터 같은 계시를 받은 형제들이다. 즉 신앙인의 한 공동체 사람들로 보고 있는 것이다. “유대교인, 기독교인과 관련하여 무슬림이 누구인가?”는 다음의 성구로 더욱 분명해진다.

“너희는 말하라. 우리는 하나님을 믿사오며, 우리에게 내려주신 것과 아브라함과 이스마일과 이삭과 야곱과 그 자손들에게 내려주신 것과, 모세와 예수가 계시 받은 것과 예언자들이 그들의 주님으로부터 계시 받은 것을 믿사오며, 우리는 그들 중의 누구도 차별하지 아니하며, 오직 그분에게만 복종하는 자들입니다.”

3. 아브라함의 신앙을 중시하는 종교

이슬람교를 설명할 때 예언자 아브라함과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무슬림은 하나님께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던 아브라함의 신앙을 그대로 따르기를 원하고 아브라함과 같은 순수한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아브라함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세 종교 모두의 공동조상이다. 무슬림은 그의 둘째 부인 하갈이 낳은 아들 이스마일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이어지고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은 첫번째 부인 사라의 아들 이삭을 통해 연결된다. 그렇지만 이슬람 전통에서 차지하는 아브라함의 위치는 기독교나 유대교 전통에서 보다 훨씬 중시되는 아주 남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무슬림은 하나님의 진리가 아담과 노아 때와 마찬가지로 아브라함때도 그 원형이 순수하게 내려졌는데, 그의 뒤를 이은 후대의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그것이 다시 일부 왜곡되고 변경되자 하나님은 모세와 예수, 무함마드와 같은 예언자들을 이땅에 보내게 되었으며, 마지막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사명은 바로 이 원형의 종교인 이슬람을 다시 아브라함때와 같이 순수한 것으로 복원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때문이다.

일신교의 역사는 기원전 19세기에 아브라함(아랍어로는 이브라힘)이 신의 가르침을 받고 그의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함으로써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이 시기에 인류는 다시 우상숭배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꾸란”에서 언급하고 있는 모습은 다음과 같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버지 아자르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우상을 신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실로 저는 당신과 당신의 민족이 분명히 잘못하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창세기” 제12장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아자르는 아랍어 이름이다)는 그의 가족을 메소포타미아 계곡 우르의 칼데아에서, 오늘날 서구가 비옥한 초생달 지역이라고 부르는 곳 북서쪽 활모양으로 구부러지는 지역의 하란으로 데려갔고, 아버지가 죽은 뒤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나와 가나인과 이집트로 옮겨갔다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되돌아온다. 이슬람 전통에 따르면 이러한 아브라함의 여정중에 메카로 갔던 것도 포함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브라함은 유대인과 아랍인의 종족적 조상이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모두가 각각 아브라함에 대한 각별한 연고를 주장한다. 유대교인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새언약을 맺었고 그 증표로 할례를 만든 원조라고 믿고 있으며, 따라서 아브라함은 토라 이전에 한 유대인이었음을 주장한다. 기독교에서는 사도 바울이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무조건적인 신앙을 가장 의로운 기독교인의 모범으로 내세웠고 그래서 아브라함을 복음서 이전에 한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무슬림들도 아들을 희생하려 했던 아브라함의 의지를 신에게 복종하는 모범적 행신(行身)으로 삼고 그를 “꾸란”이전의 무슬림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아브라함은 지리적, 종족적, 정신적으로 세 종교와 연관을 맺고 있으며, 각 종교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진정한 친구요, 신앙의 아버지로 증언하는 전통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성약을 만드셨는데, 그 내용은 그의 가족과 후손들을 크게 번성하게 하고 은혜 받게 하라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지키시리라 믿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를 훨씬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브라함에게 이집트인 하녀 하갈을 부인으로 맞을 것을 권했고, 둘 사이에서는 이스마일이 태어났다. 그리고 이스마일이 자라서 할례를 받은 후에 두번째 아들이 기적적으로 사라에게서 태어난다. 이 아들이 이삭이다. 그런데 사라는 그 후 이삭을 위한 유산 상속문제를 염두에 두고 장자이자 합법적 상속자인 이스마일에게 질투를 느끼게 되었고, 하갈과 이스마일을 집에서 쫓아 내라고 아브라함에게 강요하게 된다. 수일간의 여행끝에 타는 듯한 사막 한 가운데에 버려진 하갈과 이스마일은 한방울의 물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스마일을 살리기 위해 하갈은 물을 찾아 싸파와 마르와라는 두 언덕 사이를 일곱 바퀴나 돌았으나 허사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다른 기적의 은총을 내려주었다. 이스마일의 발밑에서 잠잠이라는 샘이 솟게 하셨던 것이다.
이슬람 전승은 하갈과 이스마일이 버려졌던 파란의 광야가 메카 근처의 사막지대였다고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그 뒤 하갈과 아들의 생사가 궁금하여 찾아와보니 모자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메카에서 잘 살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사막에 떨어진 운석을 운반해 와 제단을 쌓고 이스마일과 함께 예배소를 세워 감사의 예배를 드리니 이것이 오늘날 카아바이다. 검은 천으로 둘러쌓인 육면체 모양의 카아바는 무슬림 세계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고 이슬람의 가장 친근한 상징중의 하나이다. “꾸란”에서는 이때의 광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이스마일이 그 집의 기석을 들어올리면서, 주여, 저희가 드리는 예배를 받아주소서. 실로 당신은 모든 것을 들으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마일은 이집트 여인과 결혼하여 12명의 아들을 낳았으며 137살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 유대인들과 무슬림의 전통은 토라와 “꾸란” 또는 고대 전승에 근거하여 이와 같은 여러 이야기들이 일치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슬람 전통에서는 먼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약속을 매우 중시한다. 이 약속은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 맺어진 것이므로 이스마일은 ‘약속의 아들’이고 아브라함의 합법적 상속자임을 내세운다. 그리고 “이스마일의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말하신 이 위대한 민족이 마침내는 예언자 무함마드를 배출하는 아랍민족이라고 말한다. 또한 신께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시험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희생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을 때 주저 없이 오직 신께 복종했던 아브라함의 신앙을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시한다. 무슬림은 하나님으로부터 번제(燔祭)의 희생물로 지목된 아들이 이스마일이라고 믿는다. 그는 장자였고, 할례를 했으며, 약속의 합법적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꾸란”의 성구는 다음과 같다.

“아들이 그와 함께 일할 나이에 이르렀을 때 그(아브라함)가 말하기를, 오, 내 아들아, 실로 내가 너를 제물로 바치는 꿈을 꾸었는데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그가 말하기를, 오, 아버지, 명령하신 대로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이라면 당신께서는 제가 인내하는 자들 중의 하나임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 둘은 하나님께 복종하였고 그가 아들로 하여금 이마를 땅에 대고 엎드리게 하였을 때 우리(하나님)은 그를 불러 오, 아브라함아, 이제 너는 그 꿈을 실행하였노라. 실로 우리(하나님)는 이와 같이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보상을 내리니라.”

한편 “구약성서”에서는 제물로 바쳐질 뻔했던 주인공이 이삭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삭은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살이었을 때 태어났고, 이스마일은 그 보다 14년 전인 아브라함의 나이 86살에 태어났다. 그러니까 이스마일은 이삭보다 14살 위였고, 이 14년 동안 이스마일은 아브라함의 독자였다.
“창세기” 22장 2절에는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네 아들, 너의 사랑하는 유일한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너에게 가리켜 주는 산의 한곳에서 그를 번제로 바쳐라” 라는 내용이 있다. 번제의 대상이 독자임은 같은 장 12절에서도,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 네가 정녕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라고 언급된다. 이삭이 태어난 후에도 형 이스마일은 계속 살아 있었기 때문에 이삭을 독자라고 할 수는 없다. 또 무슬림 학자들은 모리아 땅이, 이스마일이 어린 시절을 보낸 메카에 있는 마르와 동산이라고 말하고 있다.

많은 무슬림들은 창세기에서 이삭의 이름이 이스마일의 이름을 대신해 쓰여진 것은 유대-기독교 전통의 구원의 역사에서 헤브루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언급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꾸란” 계시의 목적이 앞선 경전 내용이 인위적으로 왜곡되고 생략된 부분을 순화하고 원형의 것으로 완전하게 하는데 있다고 믿는 것이 그들의 신앙인 것이다. 무슬림들은 이슬람에서 최고의 예언자들 가운데 한 분으로 존경 받고 있는 이삭의 지위가 이러한 해석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손상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이슬람 전통에서는 아브라함과 관련된 신앙관이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무슬림의 성도인 메카의 성립에서부터 이슬람 신앙과 실천의 다섯 기둥 가운데 하나인 순례의식을 행하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이슬람은 아브라함과 이스마일의 종교적 행적과 많은 연관을 맺고 있다. 전세계의 무슬림들은 이들이 재건한 카아바를 향해 하루 다섯 차례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이슬람 전통에서 가장 큰 축제인 희생제는 바로 아브라함이 이스마일을 제물로 바치려다가 대천사 가브리엘의 중재로 양을 대신 바친 사건에서 유래한다. 무슬림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라고 외치며 양을 잡아 이웃끼리 서로 나누어 먹으며 5일 정도의 연휴를 보낸다. 메카로 성지순례를 간 무슬림 순례객들은 카아바를 일곱 바퀴 돌고, 가능한 그 안에 놓여있는 아브라함의 운석인 ‘흑석’에 입을 맞추거나 그것을 손으로 만져보려 한다. 그 뒤 카아바 동쪽의 ‘아브라함의 발자국’이 있는 곳에서 두번 절하고 남쪽에 위치한 성천 잠잠샘의 물을 마신다. 이 샘물은 신의 은총 때문인지 아직도 수량이 풍부하고 맑은 수질을 유지하고 있어 많은 순례 객들이 이 성천의 물을 고향으로 가져가 무슬림들이 마시게 한다. 또한 하갈이 물을 찾아 헤메던 싸파와 마르와 두 언덕 사이를 7번 왕복(이를 싸이라고 한다)한다.
이러한 순례의식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물론 아브라함의 순종하는 신앙관이다. 이슬람이 ‘신의 의지에 복종하는 종교’이므로 아브라함의 복종은 그만큼 돋보이는 것이다. 지나친 표현 같지만 이슬람을 ‘아브라함교’ 라고 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아브라함은 예수, 모세이전의 신의 사자로서 한 점 흐트러짐이 없던 순정의 일신교도였다. 물론, 모세, 예수 또한 순정의 일신교도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꾸란”에는 다름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유대교인도 기독교인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하니프 무슬림이었으며, 우상숭배자의 한 사람이 아니었도다.”

이슬람적 논리는 아브라함, 모세, 예수의 진정한 추종자들 모두가 무슬림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의 후대에 인위적으로 첨삭된 교리관이다. 앞의 “꾸란”에서 언급된 하니프(성실한 일신교도)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진정한 무슬림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아브라함과 같은 하니프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 유대교인들에게도 똑같이 그 길을 걸어갈 것을 권유한다. 그 길이 곧 하나님이 말씀하신 “씨라트 알 무스타낌(올바른 길)”의 길이고 결국 ‘이슬람의 길’인 것이다.

4. 이슬람은 신앙체계만이 아니다.

오늘날 서방세계의 사람들이나 우리가 이슬람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정치적, 종교적 사건들을 보면서 그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오해와 편견의 시각을 갖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답 중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사회가 정교분리 사회인데 반해 이슬람 사회는 근원적으로 정교 일치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슬람과 이슬람 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주제에 관한 논의가 무엇보다 필수적이다.

무슬림들은 이슬람을 ‘인간이 신의 뜻대로 현세를 완벽하게 살면서 내세를 준비하게 하는 신의 가르침으로, 인간존재의 모든 분야가 합일된 한 생활방식’이라고 정의한다. 이른바 이슬람은 단순한 신앙체계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생활 전반을 포함하여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전체 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슬람은 종교와 세속을 모두 포괄하는 신앙과 실천의 체계’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슬람교’보다는 ‘이슬람’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고, 그들은 이슬람교인이라는 말보다 무슬림이라고 불리기를 바란다.

불교와 기독교 같은 대다수 종교들이 세속의 삶보다 내세를 더 강조하고 인간 생활의 육체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을 중시하는데 비해, 이슬람은 내세와 똑같이 현세의 삶을 중시하고 인간생활과 영육(靈肉) 양 측면을 똑같이 중시한다. 이것은 보통 ‘이슬람은 정교 일치 체제’ 라는 말로 대변되고 있는데, 사실상 이같이 교회와 국가, 종교와 정치를 합일체제로 보는 것은 정교분리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에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교회와 국가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정교분리 원칙을 토대로 국가 구성법(헌법)을 만들고, 정교분리를 정설로 받아 들이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기독교 전통에서 비롯된 서구의 정치사상이 현대 세계에 보편화 된 영향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인은 처음부터 세속의 것과 내세의 것을 갈라놓은 예수의 가르침을 신봉해왔다. 그러나 무슬림은 종교를 바탕으로 하여 그들의 첫 공동체를 세웠고, 처음부터 공동체가 교회이자 국가인 개념에서 출발하였다. 세속을 통치하고 잘 사는 일과 내세를 준비하는 일을 구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 세계의 무슬림은 이슬람에 정치, 경제, 사회, 종교, 군사 등 제반 영역에 관한 고유의 사상과 이념, 원리, 제도가 다 들어 있다고 믿고 있다. 이 점이 다른 종교인에 비해 무슬림이 갖고 있는 가장 독특한 특징일 것이다.

정치권력에 대한 기독교인과 무슬림의 기본정신이 만들어지는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정치와 종교, 교회와 국가문제에 대한 두 종교의 차이를 비교해 볼 수 있고 정치권력에 대한 두 종교인들의 근본적으로 다른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신께서는 특별한 시간과 장소에서 직접적이고도 결정적으로 인류사회에 개입하셨다.” 아마도 이것은 기독교인과 마찬가지로 무슬림도 똑같이 갖고 있는 신앙의 핵심일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인류역사에 개입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직접 드러냄으로써 스스로 인간이 되셨다는 ‘신의 말씀의 육신화(incarnation)’를 믿고, 바로 이것이 그들 교리의 모체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요한은 이것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표현하였다. 그렇지만 무슬림에게-유대교인도 마찬가지지만-이러한 개념은 극도로 불경한 것이다.

그것은 신의 절대적 유일성을 손상시키고 다신교적 우상숭배의 문을 열어 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슬림은 신의 말씀이 모세, 다윗, 예수, 무함마드 등 신의 사자들을 통해 전달되었다고 믿는다. 예수에 뒤이어 무함마드는 신의 마지막 예언자로 선택받았다. 분명히 그는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렇지만 무슬림들 중 누구도 그가 인간 이상의 존재라거나 신의 말씀의 주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계시되는 신의 말씀을 인류에게 전달한 한 사람의 메신저였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무슬림이 스스로를 ‘무함마드 신봉자’라고 부를수 없다고 말하는 진의(眞意)이다. 그들이 믿는 대상은 오직 알라뿐이다. 그들은 신의 의지에 무조건 복종하는 사람들이고 신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이슬람은 아랍어 동사 aslama(복종, 순종하다, 몸을 맡기다)를 어근으로 한다. 앞에서도 말하였듯이 이것은 신의 뜻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함마드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가 신의 말씀을 전해준 마지막 예언자라는 사실 때문이다. 무슬림의 신조는 그들의 신앙증언문인 다음 한 문장에 함축되어 있다. “라 일라하 일라 알라(일랄라) 무함마드 라술 알라(라술룰라)(알라이외에는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신의 사자이다)” 이 한 문장을 언급하는 순간부터 누구나 무슬림이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유대공동체가 고통스럽게 로마제국에 합병되어 가고 있던 팔레스타인 땅에서 인류역사에 대한 직접적인 신의 개입이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다.
무슬림들은 그 후 600년이 지난 뒤 비잔틴 로마와 사산조 페르시아 두 제국이 자웅을 겨루며 동서방의 패자로 경쟁하고 있던 시대에, 아직도 미개하고 순수한 땅이었던 히자즈에서 다시 한번 결정적인 개입이 일어났다고 믿고 있다. 장소와 시간에 대한 이러한 견해 차이와, 이를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타자의 종교나 예언자의 사명 같은 것을 인정하느냐 못하느냐라는, 서로의 종교에 관한 근원적인 이해관계 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에 대한 두 종교의 교리관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자렛 예수는 공동체의 종교가 곧 민족적 독립과 직결되어 있을 때 태어났다. 마태오는 탄생한 아기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였고 당시 로마의 앞잡이 헤롯왕이 자행한 유아대량 학살 사건을 예수의 탄생과 관련시키며 예수의 탄생 그 자체가 정치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유대민족의 해방과 독립은 당시 거의 가망 없는 주제였다. 그리고 로마제국의 힘에 눌려 민족국가나 유대교의 부활을 위한 운동 같은 것은 재앙만을 불러올 주제였다. 그리고 예수 사후 40년이 지나면서 그러한 재앙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당시 예수는 좁게는 유대주의, 넓게는 기독교의 비정치적 해석을 설명함으로써 예수의 가르침의 정수와 본질이 종교적인 것일 뿐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는 ‘내 왕국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그는 유대교 예언자들이 앞서부터 예언해왔던 민족적 지도자 메시아가 다시 도래할 것임을 예고하면서 조직화된 정치적 반란을 통해 쟁취하는 국가보다는 오히려 믿음, 소망, 사랑을 통해 개인이 성취하는, 다가오는 세상에서의 종교적 구원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또 그는 이러한 구원은 단지 유대인에게만 예정된 것이 아님을 밝혔다. 예수는 그것이 세상 만민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래서 누가(Luke)는 예수를 ‘만민의 구세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예수 사후 사도 바울(Paul)도 이 점을 확고히 재천명하였다. 그 후 기독교는 로마제국 치하에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후에는 더 나은 세상이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한마디로 말해 그가 목표로 삼은 왕국은 현세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쳐라”라는 가르침으로 간명하게 표현된다. 이렇게 기독교는 현세의 정치(국가)와 내세의 종교(교회)를 엄격히 구분하고 시작하였다. 그러한 연유로 기독교인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고 교회라는 개념과 국가라는 개념을 별개로 인식하며 살아 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종교와 신앙이라는 것이 개인차원의 문제이지 국가가 관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학파를 출현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기독교 세계는 교회와 국가를 분리하는 것을 정도(正道)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은 시작부터 국가와 종교를 구별하지 않았다. 무함마드가 세운 이슬람 공동체인 움마는 처음부터 국가로 불려야 할 것이었다. 그는 처음 메카에서 신의 말씀과 복음을 전달하는 신의 예언자로 등장했지만, 메디나 공동체와 그 정부는 비록 단순한 형태였지만, 민족, 영토, 통치권 등 국가의 구성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무함마드는 공공예배에서는 신도를 인도하였고, 전장에서는 군대를 이끄는 군사지도자였으며, 공동체내부에서는 여러분쟁을 해결하는 중재자이자 재판장이었다. 그밖에도 필요한 조약을 체결하고 규약을 제정하며 각 지역에 필요한 행정명령을 내리는 등 무함마드는 분명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의 지위에 있었다.
그의 뒤를 이른 칼리파(후계자)들도 움마 통치를 위해 무함마드가 행사하던 정치, 종교의 대권과 그 권위를 그대로 계승하였다. 칼리파들은 움마를 통치하는 정신적, 세속적 지도권이 당연히 그들에게 있다고 믿었다. 또 무슬림 역시 이 두가지를 구분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슬람 칼리파제도는 정치와 종교의 일을 나누었던 중세 기독교 사회의 교황-황제체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중세초반 동,서양을 대표하던 이 두 경쟁적 정치제도는 모두 신의 예정에 따라 존립하고, 계시된 신의 말씀에 따라 체제의 권위를 부여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신의 이름 아래 세계적인 권위와 권력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기독교 내에서는 황제와 나란히 교황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교황에게는 황제가 갖고 있지 않은 영적 권위와 기능이 있었다. 그는 지상에서 신의 대리인이었고 인간의 영혼을 지배하며 인도하는 자였다. 이에 비해 황제는 인간의 육신에 관계되는 사항들을 다루는 것이 임무였다.

세속통치가 주요 임무였던 것이다. 이 독립된 두 권위 사이에는 서로의 이해가 상충되어 장기간 충돌과 대립이 지속되었다. 이와 비교해 볼 때 칼리파제도는 표면적으로 –본질적인 기능과 역할면에서는 다르지만-중세 기독교 사회에서의 교황-황제체제를 하나로 묶어 놓은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칼리파제도가 정교일체 제도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렇지만 한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전통 무슬림 사회에서 교황과 동일한 기능을 가진 존재는 결코 허용될 수 없다는 점이다. 전통 이슬람에서 오류절무(誤謬絶無)의 신성한 존재 또는 신과 인간사이의 영적 중재자와 같은 지위와 개념은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의 계시에 따라서도 이슬람의 정교일치 개념은 보증받고 있다. “꾸란”은 신에 대한 복종(종교적 복종)과 현세의 통치자에 대한 복종(정치적 복종)을 동시에 가르친 것이다.

“오, 믿는 자들아, 알라께 복종하라. 그리고 신의 사자와 너희 가운데 권위를 가진자들에게 복종하라.”

여기서 ‘권위를 가진 자’란 통치자를 뜻한다. 무슬림은 신께 복종하듯이 무함마드와 칼리파들에게도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신앙이다. 통치자에 대한 복종을 의무화하는 대표적인 하디스(예언자 언행)로는 “나에게 복종하는 자 누구나 신께 복종 할 것이고, 내게 거역하는 자 곧 신께 거역할 것이다. 통치자에게 복종하는 자 누구나 내게 복종하는 자이고, 통치자에게 반역하는 자 곧 내게 반역하는 자이다.”를 들 수 있다. 그렇지만 “꾸란”은 무슬림들이 이슬람 국가의 수장(首長)인 칼리파에게 부단히 충언해야 하고, 부정한 통치자의 신하가 된다거나 추종을 삼가야 한다는 것도 동시에 가르쳐주고 있다.
칼리파가 종교, 정치의 대권을 한 손에 쥔 정교 일원적 통치권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정치인이기전에 신실한 종교인이어야 하고 무슬림 신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독실하고 종교적으로 올바른 인물만이 칼리파로서 하나님의 종복인 무슬림을 이끌고 공동체를 위해 선한 정부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예를 들면 압바스조 초기에 출현한 이슬람 정치사상가 이븐 알 무깟파아 Ibn al-Muqaffa(759년 사망)와 이슬람 법학자 아부 유수프 Abu Yusuf(798년 사망)는 국가권력이 비대해질수록 칼리파의 통치행위는 독재화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칼리파에게 요구되는 자질로는 무엇보다 독실한 신앙심과 정의임을 강조하였으며, 칼리파는 신이 맡겨놓은 양떼들을 돌보아야 하는 양치기라고 묘사하였다. 나아가 정부의 주요 기능도 “꾸란”에 명시된 대로 사람들을 신법(神法)에 확실히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꾸란”을 정확히 해석해내는 일이 급선무였고, 또 무함마드가 말하였거나 실제로 행한 선례에 비추어 움마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판결하려 했다. 그러므로 “꾸란”과 예언자 무함마드가 남긴 순나(관행)는 종교적인 일, 정치적인 일의 구별없이 움마통치의 근간이 되었다. 그들은 그것이 곧 ‘신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꾸란”과 예언자 순나는 이슬람 법인 샤리아의 양대법원(兩大法源)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만약 통치정부가 나쁘면 그것은 통치자가 통치하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통치자가 더 이상 독실하지 못하거나 종교적으로 올바르지 않아 신법인 샤리아에 복종하지 않고 등한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움마에서는 정치반란들이 항상 종교적인 이유를 내세우면 정당화되었다. 그리고 비록 정치적 변혁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 목적에 종교적 대의가 올바르게 세워져 있는 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무함마드가 남긴 다음의 하디스로도 뒷받침된다. “나의 공동체는 오류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 내에서는 카와리지나 쉬아 같은 분파가 생겨나 끊임없이 기존 정권에 대항하는 반정운동을 전개해도 묵인될 수 있었으며, 나아가 지방에서는 권력이나 군사력이 신장되어 중앙정부에 도전하는 정치적 분열현상이 계속 일어나도 간과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1,4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현대의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들은 친서구적이고 세속화된 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교일치의 진정한 이슬람 국가의 건설을 외치고 있고, 급기야는 자신들의 정치, 종교적 가치관만이 올바른것이라는 신념 아래 극단주의의 여러 급진 문장세력을 조직하여 나름대로의 정치적, 종교적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무슬림에게는 정치적인 일이 곧 종교적인 일이며, 항상 역사에서 칼리파의 지위를 원하는 자도 칼리파를 탄핵하려는 자도 모두 “꾸란”과 예언자 순나를 내걸고 투쟁했던 것이다.
무슬림들이 공동체(국가)를 세우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꾸란”은 무슬림의 기본의무를 다음과 같이 명확히 가르쳐주고 있다.

“무슬림들은 …..예배를 행하고 자카트를 내며, 선을 실행하고 악을 금하는 그런자들이니….”

땅위에 국가를 세웠을 때 무슬림들음 먼저 예배와 자카트(종교구빈세)같은 종교적인 일을 시행해야되고 동시에 선한일을 행하고 악한일을 금하게 하는 정치적인 일을 수행해야만 한다. 무슬림들은 “올바른 일(선, 정의)을 행하고 악을 금하라”는 이 명령을 이슬람국가와 무슬림 개인 모두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첫번째 의무사항으로 생각하고 있다. 무슬림들은 이 의무의 실천을 이슬람이 제시해온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가르침과 기본원리들을 결합하고 있는 가장 결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슬림 정치학자들은 무슬림국가에서는 이 의무의 실천을 최우선으로 제도화하고, 필요하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그 실행을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곧 이슬람 정치의 근본임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의 성구를 통해 “이슬람에서는 종교와 정치를 구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된다. 왜냐하면 선을 행하고 악을 금하는 일이 곧 종교의 길이고 목표이며, 또한 종교의 일을 하는 것이 곧 정치임을 깨닫게 하기 떄문이다.
무슬림들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정교일치원리에 대한 감정은 또 다른 중요한 이슬람의 가르침인 예언자 무함마드의 다음과 같은 하디스에서 읽을 수 있다.

“너희들 중 누구든지 악행을 보는 자는 자신의 손으로 그것을 바꿔 놓아야만 하고,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혀로라도 시도해야만 하고, 만약 그렇게도 할 수 없다면, 그때는 신앙의 가장 약한 표현인 마음속으로라도 그것을 행하여야만 한다.”

이 하디스는 오늘날까지 무슬림의 국가, 사회, 개인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행동의 기본지침이 되고 있다. 불의와 악행을 보고 그냥 앉아 있는 것은 올바른 신앙인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하디스의 마지막 구절에서 보듯이 마음으로만 실천하는 행위는 가장 신앙심이 약한자들이 가는 길이다. 정의를 위해서는 언제나 적극적인 사고와 더불어 ‘신앙의 실천주의’를 몸소 실행하여야 한다. 이 하디스는 “옳은 일을 명하고 악한 일을 금하라”는 “꾸란” 성구의 의무적 실천과 직결되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르침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무적 실천주의는 그 보편성에서 무슬림 생활의 모든 측면을 포괄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많은 무슬림들은 이 의무의 실천이야말로 무으미닌(믿는 자들)의 인격에서 필수 요소의 하나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아마도 이 하디스는 신앙의 순결성과 실천주의를 표방하면서 우마이야조 내내 급진적 행동주의자들로 반정운동을 벌였던 카와리지 분파의 독특한 교리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이집트에서 등장한 이슬람 원리주의 그룹인 무슬림 형제단의 정치강령과 그들의 이슬람 운동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슬람의 이데올리기화를 주장하는 거의 모든 이슬람주의 운동에서도 그 정신을 찾아 볼 수 있다.

5. 성직자제도가 없고 샤리아를 따르는 종교

이슬람에는 성직자 제도가 없다. 이 점 또한 다른 종교와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 중 하나이다. 이슬람은 신과 인간 사이에 영적인 어떠한 중간매체도 두지 않으며, 인간과 신의 직선적 관계를 중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예배, 선교, 교육 등 종교생활의 운영방식에서 타 종교인들과 다른 면을 보인다. 종교교육자나 선교사를 따로 두려 하지 않고 스스로가 선교사이고, 스스로가 누구보다 훌륭한 교육자임을 자처한다.

예를 들어 이맘은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맘이 될 자격은 사막의 베두윈이거나 여행자이거나 젊은이, 무식자, 걸인 등 누구에게나 부여되어 있다. 이맘의 지위를 취득하기 위해서 특별교육과정이나 성직수임식, 안수식 같은 어떤 절차나 의식을 거치치 않아도 된다. 다시 말해 이맘은 누구나 될 수 있으며, 이슬람교에는 기독교의 성직자 계급같이 특별한 영적 자질과 권위를 갖고 종교적 의식과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평신도와 구별된 특별한 사람들 또는 사제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슬람을 믿는 사람은 모두 신 앞에 평등하다. 결코 접근할 수 없는 신의 본질, 신의 위엄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동등한 지위인 것이다. 이같이 이슬람은 평등주의를 내세운다. 신 앞에서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는 무슬림은 누구나 똑같다. 무슬림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더 신에게 가까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울라마는 이슬람 종교에 관한 지식을 쌓은 무슬림 법학자, 신학자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성법의 수호자로서 간혹 중세 기독교 사회의 성직자들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사실상 울라마와 기독교 성직자의 지위는 상당히 다르다. 물론 울라마는 성직자는 아니다. 단지 종교에 관한 가르침과 올바른 인도를 할 수 있는 지식인들로서 높은 학식 때문에 무슬림대중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무슬림 학자들일 뿐이다. 이들도 역시 울라마가 될 때 어떤 자격증 수여식이나 특정 종교의식을 거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죄를 용서한다거나 파문을 선언하는 일 같은 초인적 지위에서나 행할 수 있는 권한은 더더욱 갖고 있지 않다. 그들도 똑 같은 무슬림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어떤 방법을 통하더라도-신과 인간 사이를 중재한다거나 둘 사이의 관계를 이들이 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한다. 즉 이슬람에는 주교나 신부, 목사와 같은 사제 신분이나 영적 인도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과 육신은 완전히 신의 소유라고 무슬림들은 생각한다. 신의 본질과 인간의 본질은 전혀 다르고 관련이 없는 것으로 양자간의 구분이 분명하다. 신은 유일한 존재자, 절대자이고 인간은 다만 신을 경외하며 신의 의지에 복종하는 피조물에 불과하다. 이렇게 이슬람은 인간과 창조주 사이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인간과 창조주 사이의 직선적 관계를 무엇보다 강조하는 종교이다. 신과 인간 사이에는 어떤 중재자도 둘 수 없다. 중보다(仲保者)나 영적 중개인이란 존재를 두지 않는 것이다. 이맘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공동체의 수장인 칼리파도 신앞에서는 평신도와 똑같다. 이 점이 중세 기독교세계에서 황제와 교황의 지위와 이슬람 칼리파의 지위가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다. 칼리파의 권력은 절대 권력이 아니다. 그가 공동체 안에서 종교문제에 대한 모든 지도권을 소유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권위나 권력이 신과의 관계에 직결되어 있다거나 신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칼리파는 공동체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이고, 무슬림은 종교수호와 세속정치에 대한 그의 능력과 자질을 신임하고 그에게 충성 서약을 함으로써 칼리파의 권력이 비로서 얻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칼리파제도는 절대권력의 전제적인 통치권제가 아니고 신에게서 권력을 수임하는 신정주의의 산물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움마 구성원들의 찬동(충성서약)에 따라 움마와의 계약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그를 탄핵하고 직위를 해제할 권한을 공동체가 갖고 있는 일종의 민주적 제도인 것이다.

이슬람이 다른 종교와 비교하여 다른 또 하나의 특징은 특별한 법체계를 갖고 있고 모든 무슬림은 이 법체계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무슬림의 삶은 샤리아의 지배를 받는다. 샤리아는 아랍어로 길을 뜻하는 말이다. 무슬림이면 누구나 ‘복종하고 좇아야 할 길’로서 ‘알라께 나아가는 길’이며 그 목표는 신의 의지에 귀의하고 복종하는 것이다. 무슬림은 이 길을 잘 지키고 따라가기만 하면 누구나 신의 의지에 도달하고 복종하며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샤리아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공동체 생활의 중심이 되어 왔다. 이슬람이 다른 종교와 달리 ‘신앙과 실천의 체계’이고 현세의 삶을 중시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와 공동체 생활 내에서의 실용적 요구가 신학보다 먼저 법학을 발전시키고 체계화시켰다.
구원에 이르는 기독교인의 길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를 믿는데 있는 것이라면, 무슬림의 길은 바로 이 샤리아를 받아들이고 이에 복종하는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울라마들은 이 법이 신이 만든 것이지 인간이 창제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법의 원천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꾸란” 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주요 임무는 법을 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규율을 확인하고 해석하며 정리하고 설명해 내는데 있다고 강조한다. 즉 그들 중 누구도 독단적으로 절대적인 해석을 주장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이것은 법학자들간에 법 해석의 다름과 유연성을 낳았다. 따라서 상이한 법학파들이 이슬람세계의 상이한 지역에서 권위 있는 학파로서 인정 받게 되었다. 이들 4대 법학파(하나피, 말리키, 샤피이, 한발리)가 수집하고 성문화한 피크(법)의 기본 골격은 모두 같은 것이다. 다만 일부 세세한 사항에서만 해석과 실천에 이견을 보이고 있다. 순니 무슬림들은 누구나 이 4대 법학파 중 한길을 택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샤리아는 무슬림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그들의 행위를 구속한다. 샤리아의 준수의무는 무슬림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칼리파라고 예외일 수 없다. 물론 이슬람 역사에 출몰하던 무슬림 군주들이나 강력한 실제 권력을 쥔 통치자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와 같은 점이 기독교 전통에서 교회법과 국가법 사이에 발생하던 갈등관계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세 기독교세계의 황제와 교황간의 관계와, 무슬림 전통에서의 칼리파제도 또는 법제도가 근원적으로 다른 점이다.
한마디로 이슬람 국가는 신법에 따라 통치되는 국가이다. 이것은 무슬림 세계에서의 법과 정치이론은 곧 종교교리에 근거한 것으로서, 신의 계시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믿음을 기초로 한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유럽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왜냐하면 그들의 법체계와 정치이론이 기독교 교리에 근거하여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마법은 기독교 발생 이전에도 엄연히 존재하였고,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도 교회법과는 별개로 시행되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서방사회와 이슬람 사회가 다른 점이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꾸란” 으로부터 교리와 법이 똑같이 만들어지고, 그 결과 서방세계나 우리사회에서 말하는 종교, 도덕상의 죄(sin)와 법률상의 죄(crime)를 구별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무슬림세계에서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정신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이라는 이종(二種)의 검(劒)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이자 국가’라는 이슬람의 전통적 정교일원론은 변할 수 없는 무슬림들의 신앙이다. 이들은 정치제도와 관련된 정치원리들이 “꾸란”에 명시되어 있고 예언자도, 그 후 후계자들(정통 칼리파들)도 이 원리들을 국가 통치에 실제로 적용하였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세속 국가들의 기본 목표는 공익(Public Interest)을 실현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이 공익의 개념은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들의 정치철학과 이상, 사회, 경제 사상들에 따라 국가마다 다를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그것은 다음 두 가지 주요 특색을 갖는다. 첫째, 현세의(dunyawiy), 세속의 (jamaniy) 것이라는 점이다. 이 개념 속에는 정신적, 종교적 요소는 들어 있지 않다. 둘째, 헌법 제정의 권한을 갖는 국민들의 중의를 집약시켜 공익을 달성한다는 점이다. 국가는 중의가 지시하는 것에 따라서 공익을 결정한다. 다시 말해 여기서의 공익결정은 정치적 힘에 따른 것이다. 반면 이슬람 국가에서는 공익이 이와 같은 정치권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대중의 견해, 시대조류, 이념 같은 것에 따라서가 아니라 이슬람 국가에서 공익과 복리는 종교를 세움으로써 성취되는 것이고, 샤리아에 복종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이슬람 국가와 서방 또는 현대 세속국가의 목적과 역할 사이에는 이 같은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국가의 구성요소 중 주권에 대한 기본 개념도 다르다. 이슬람 법에 따라 주권은 신에게 속하며, 국가나 국민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슬람 국가의 국가기관은 절대 권력을 갖지 못한다. 신법에 따라 제한된 범위내의 집행권만을 행사할 뿐이다. 서방세계의 강대국들은 20세기 초부터 서구식 민주주의를 이슬람 국가에 정착시키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다당제, 의회제도, 선거제 같은 것은 이슬람의 원리에 맞지만 주권재민이라는 기본 개념은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슬람식 민주주의를 추진해야 하며 서구제도와 사상을 평행적으로 이식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은 서구인이나 우리가 이슬람과 이슬람 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꼭 알고 있어야 할 사항들이다.

6. 서방세계에서 본 이슬람

무슬림 동방세계와 기독교인 서방세계는 수 세기 동안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대하고 있으면서 때로는 평화스럽고 우호적인 선린관계를 유지했지만, 또 다른 오랜시간동안 반목과 불화, 대립과 갈등 속에 있었다. 지금도 일반적으로 무슬림이나 기독교인 모두가 그들이 서로 얼마나 많은 종교적, 문화적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지적, 정신적, 물질적 영향을 서로 주고 받았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의 예언자인 무함마드가 “구약”과 “신약”에서 모세와 예수가 전해주었던 똑 같은 메시지를 인류에게 그대로 전한 매우 중요한 전달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많은 서방의 기독교인들에게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경멸스러운 혐오의 대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최근의 여러 학문적 성과물들이 이슬람에 씌워져 있던 두터운 편견과 오해의 층을 걷어내기 전까지, 서방세계는 이슬람 세계에 대해 왜곡되고 자기 중심적인 시각만을 갖고 있었다. 서방세계는 이슬람 세계에 대해 왜곡되고 자기 중심적인 시각만을 갖고 있었다. 2003년에 타계한 에드워드 사이드(Edwad Said)는 그의 훌륭한 대표적 저작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을 통해 서구학자들이 일방적인 잣대로 평가해 온 이슬람에 대한 생각을 바로 잡고자 했다.

지리적 여건과 잦은 인적 교류, 물적 교역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일찍부터 무슬림들을 ‘가짜 예언자’를 신봉하는 무지한 사람들로 오해하고 있었다. 그곳은 오랫동안 유대인들이 그들 나름의 선민사상에 따라 기독교인들을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 예수를 신봉하고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로 보았던 것과 흡사하였다.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오해를 받은 후 몇 세기가 지난 뒤, 다시 그리스도 추종자들의 눈에는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이 그들의 신이 세워놓은 위대한 계획, 즉 ‘구원’이라는 명제에 어울리지도 않고, 결코 동조할 수도 없는 ‘신성모독자들’로 비쳐졌던 것이다.
실제로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을 인간 무함마드를 숭배하는 신앙체계로 오해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슬람과 무함마드교(Mohammedanism)를 동의어로 사용하였다. 20세기 초 네덜란드 치하의 인도네시아 정치고문이었던 휘르호로녜(E. Snouck Hurgronje)가 쓴 “모함메다니즘(Mohammedanism)”(N.Y.:Putnam, 1916)이란 책의 제목에서 보듯이 이러한 오류는 유럽에서 보편화 되어 있었다. 그 뒤 또 다른 저명한 이슬람 역사가인 기브(H.R. Gibb)도 같은 이름의 책을 출간했다가(1945년), 2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잘못의 심각성을 깨닫고, 제목을 “이슬람(Islam)”(1968년)으로 바꾸었다. 독실함 무슬림들에게 모함메단(Mohammedan, 무함마드의 신봉자)이라고 불리는 것보다 더 큰 모욕과 잘못은 없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용서 받지 못할 가장 큰 죄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슬람에 대한 서방의 적의와 몰이해는 매우 이른 시기부터 나타났지만, 특히 십자군 전쟁(기독교 세력이 11~12세기에 팔레스타인 땅을 침략한 사건)중에 기독교 유럽인들의 적대감이 급상승하면서 더욱 구체화되어 발전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유럽의 왕들과 카톨릭 성직자들은 무슬림들을 제거해야 하는 악마의 자식들로 묘사했고, 기독교 신부들은 이슬람을 이단으로 간주했다. 무슬림은 이교도이고 무함마드는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에 반기를 들고 반역을 꾀한 ‘사기꾼’이자 ‘배교자’였다. 십자군 원정은 실패했지만 유럽인들의 무슬림에 대한 적의는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18세기에 이르러 서구인들은 드디어 문명사회의 우열을 뒤집고 무슬림에게 복수하기 시작하였으며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이슬람 세계의 95%이상을 지배하게 된다.
단테(Alighieri Dante)는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를 그의 “신곡(La divina commedia)”의 지옥편에서 ‘가장 저급하고 흉물스러운 추문과 불화의 사나이’라는 오명과 함께, 두 동강이로 몸이 찢겨진 채 영원히 나올 수 없는 끔찍한 지옥의 수렁 속으로 던져 넣었다. 기독교인 작가들은 그 후에도 무함마드에게 더 나은 평가를 주지 않았다.

17세기 말 출간된 “무함마드의 생애(Vie de Mahomet)”라는 책에서 프리도(Prideaux)는 무함마드를 ‘비신자들, 무신론자들, 이신론자들, 방탕자들의 거울이 되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이러한 이슬람에 대한, 또는 무함마드에 대한 적의로 가득 찬 유럽인들의 태도는 중세초기부터 계몽주의 시대까지 계속 되었다. 물론 그 첫 번째 이유는 무지 때문이었다. 비종교적인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종교적 회의론자이자 이신론(理神論), 즉 자연신교(Deism)의 예언자격인 프랑스의 볼테르(Voltaire, 1694~1778년)도 무함마드를 광신주의의 원천으로 보았다. 그러다가 아베 마라치(Abbe Maracci)에 이르러서야 다소 긍정적인 표현이 등장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꾸란” 라틴어 번역에서 “이 종교는 기독교 종교로부터 분명히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 자연의 법칙과 광명에 일치하는 자연의 진리에 대한 많은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슬람을 기독교의 한 비뚤어진 연장선상의 종교인 것 처럼 마지못해 인정하였다.

18세기와 19세기에도 이슬람을 공박하는 작업은 지속되었다. 특히 이 기간 중에는 기독교 선교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는데, 기독교 선교사들은 이슬람에 대한 폄훼와 비난을 행했다. 이슬람 종교와 이슬람의 예언자를 객관적으로 고찰해보려는 문헌작업은 거의 시도되지 않았다. 1704년 앙투안 갈랑(Antoine Galland)이 “천일야화”를 번역함으로써 이국적이고 흥미진진하고 색다른 이슬람 세계가 소개되었을 뿐이다. 18세기 후반, 웨트레흐트(Utrecht)대학의 한 네덜란드 신학교수는 “이슬람보다 더 많은 비방을 받은 종교는 없을 것이다”라고 술회하였다. 이즈음 가장 큰 업적은 영국학자 조지 세일(George Sale)이 “꾸란”의 영어 번역을 시도한 일이다.
근대에 들어서 비로소 이슬람 세계를 보는 서구인들의 시각과 태도가 폭넓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기독교에 대한 비평을 모색하던 계몽주의 학자들이 점차 이슬람이 담고 있는 합리적인 교리와 사상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이 바로 그들의 과거 업적이었던 그리스 철학, 의학 등을 다시 유럽에 전달한, 그들보다 우월했던 문명화 된 세력이라는 것을 알아보기 시작하였고, 예언자 무함마드는 통찰력 있는 사상가인자 합리적인 종교를 창시한 인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러한 학자들의 새로운 관심과 연구는 1830년대에 이르러 본격화되었다.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의 편견과 오류를 체계적으로 밝혀내고, 아랍어, 페르시아어 등 이슬람권 언어로 된 자료와 문헌을 이용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독일의 동양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고정관념과 잘못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명백한 증거를 이용해 이슬람 연구를 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우호적 관점에서 이슬람을 고찰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한 예는 바일(Weil)교수의 다음 증언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무함마드)가 신앙의 광명이 아직 비쳐지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구약과 신약의 가장 아름다운 가르침을 가져온 당사자인 한, 비록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이 아닐지라도 그는 누구에게나 신의 사자 중 한 사람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헝가리 사람으로 부다페스트 대학의 신학교수였던 이그나츠 골드치어(Ignaz Goldziher), 네덜란드 학자이자 행정가였던 스노우크 휘르호로녜, 영국계 미국인 학자 맥도널드(Duncan Black MacDonald)등은 이슬람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 특히 골드치어는 이슬람학을 서구에서 처음으로 학문다운 수준으로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이들은 깊이 탐구한 이슬람학 연구서들을 내놓아 이슬람 전문학자의 시대를 열었다. 뒤를 이어 이슬람 신학과 신비주의 영역의 권위자로 인정받게 되는 프랑스의 루이 마티뇽(Louis Matignon), 역사학자인 영국의 해밀턴 기브(Hamilton Gibb), 미국인 마샬 호지슨(Marshall Hodgson)등이 뛰어난 통찰력으로 이슬람 신학과 역사학 분야에 족적을 남겼다. 또 저명한 동양학자들로 드 페르세르발(de Percerval), 라멘스(Lammens), 카에타니(Caetani), 무이르(Muir), 놀데케(Noldeke) 등도 꼽을 수 있는데, 모두가 예언자 무함마드와 이슬람에 대한 선구자적인 작업들을 행하였다. 그들의 저서들은 곧 후대에 권위 있는 고전적 문헌이 되었으며, 이들의 학문적 성취와 결과들을 통해 의도적으로 꾸며지고 감정적으로 적의와 편견을 쌓았던 이슬람에 대한 유럽인들의 잘못된 시가의 원인들을 파악하고 교정할 수 있었다.

사실 오리엔탈리스트(이슬람 연구에 헌신해온 서구의 동양학자들)로 불리게 된 이들은 자신들이 이슬람과 이슬람 세계를 깊이 있게 연구하였다고 자부하였고, 실제로 그들이 여러 영역에서 남긴 나름대로의 큰 공적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양학자들의 자만을 단번에 무너뜨린 책이 1978년 에드워드 사이드가 쓴 “오리엔탈리즘”이다. 예리하고 심오한 통찰력을 가진 그에게는 오리엔탈리스트들의 객관성이 문제였다. 그는 서구학자들이 그들의 잣대와 경험으로만 이슬람을 분석하여 무슬림의 실제와는 거리가 먼 이슬람 사상을 만들어 냈고, 또한 그들이 얼마만큼 이슬람의 진실을 왜곡했는지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말하였다. 결국 그들은 이슬람 사회에 대한 서구의 우월성을 설명하려 했으며, 계속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인식의 창출에 이바지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중세 유럽은 아랍을 비롯한 이슬람 문명권으로부터 지적, 정신적 영향을 받았다. 서구의 동양학자들은 가장 집중적으로 영향을 받은 시기가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였던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이때 이슬람 경전을 번역하기 위한 연구소들이 시칠리아, 바르셀로나, 톨레도, 세비야 등지에 세워졌고, 이를 통해 신학, 철학, 의학뿐만 아니라 헬레니즘 문명의 소중한 유산들과 수학, 철학, 천문학, 광학, 점성술, 화학, 자연과학, 신비주의 등 무슬림들의 다양한 성취와 업적들이 서구세계로 유입되었다. 이 모든 분야의 것들이 잠자던 중세 유럽을 깨웠고 기독교 사상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직물, 카펫, 금속공예, 유리제조, 세밀화법, 제본술 등이 중세와 근세초기 유럽세계의 시장과 생활상을 바꾸어 놓았고, 비단과 종이를 서구에 전한 것도 무슬림들이다. 설탕, 면화, 감귤류 재배법도 마찬가지다.
여러각도에서 이슬람을 조명하고 이슬람에 대한 객관적 고찰과 깊이 있는 학술 연구의 경향은 유럽을 거쳐 오늘날에는 미국에서 주도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렇지만 사실상 통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세계인은 하나로 묶여 있고, 인터넷으로 인해 모든 것은 개방되고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시공을 초월하여 지구촌 구석구석의 문화적 가치와 정신적 유산에 대한 지식을 공유할 수 있다.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카이로, 이스탄불, 탕헤르, 바그다드, 다마스쿠스, 사마르칸트 등 매혹적인 이슬람의 도시들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학문적, 문화적, 종교적 관심들을 만족스럽게 풀어갈 수 있다.

7. 오해받고 있는 이슬람 세계

아직까지도 이슬람은 우리나라에서 낯설게만 느껴지는 종교이다. 사막과 낙타를 연상하게 되고 베두윈 또는 히잡을 쓴 여성이 떠오르는 먼 미지의 세계일 뿐이다. 지난 2001년 뉴욕에서 가공할 9.11 테러사건이 발생한 뒤로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한층 더 고조되었고, 그만큼 이슬람 세계와 종교, 문화에 관해 제대로 알고자 하는 논의와 질문들이 많아졌다. 그 중에서도 무슬림들은 과연 호전적인가? 이슬람 원리주의자는 모두 테러리스트들인가? 이슬람 세계는 일부다처제만을 고수하는 사회인가? 이슬람 세계는 남녀불평등 사회인가? 등이 아마도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질문인 것 같다.

서양 사람들은 무슬림들이 ‘한 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이슬람종교를 전파했다고 선전해왔다. 오랫동안 이슬람이 호전적인 종교인양 묘사하면서 이슬람의 폭력성을 부각시켜온 것이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이슬람을 다룬 내용들은 대부분 악의적인 편견으로 가득찬 것이었다. 그런데 무슬림들이 아직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최근의 많은 서양세계 지식인들조차도 ‘호전적 이슬람’,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리즘’과 같은 말을 분별없이 자기중심적으로 쓰면서 이슬람이 위협적이고 도전적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호전성이야말로 이슬람세계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폭력사태의 근원적 요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한 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칼’이란 말은 역사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다. 1,400년의 이슬람 역사에서 이슬람 공동체는 안팎으로 화해와 용서, 절충과 합의를 통한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십자군 원정에서처럼 서방과의 충돌과 대립에서 침략행위자는 거의 서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인들 사이에서는 이슬람이 비신도에 대적하는 전쟁을 의무화하고, 단지 비신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적을 살해하라고 명령하는 무자비한 폭력의 종교로 회자되고 있다는 것이다.
1187년 십자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다시 탈환한 살라딘(1138~1193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슬람은 관용의 종교이고 인권과 생명의 존엄성을 최상의 가치관으로 교리에 담고 있는 평화의 종교이다. 이슬람의 의미는 평화이며, 하나님의 99개 이름 중 하나도 평화이다. 무슬림들의 일상의 인사말도 평화를 나타낸다. “앗 쌀람 알라이쿰(평화가 당신에세 있기를)” 평화는 이슬람의 본질이요, 의미적 상징이요, 목적이다. 88년 전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무슬림과 유대인에게 저질렀던 대량학살과 포악스러운 약탈행위와는 반대로, 살라딘은 투항하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자비를 베풀고 용서와 화합의 선정을 베풀었다. 이러한 그의 기사도적 관용정신은 서양에서도 널리 알려져 사자왕 리처드에 버금가는 정의와 평화의 영웅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무슬림들이 얼마만큼 인간의 생명뿐만 아니라 초목까지도 존귀하게 다루고자 했는지는 무함마드의 후계자인 아부 바크르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632년 제1대 칼리파로 등극하자마자 예언자 무함마드가 계획했던 시리아 원정을 시행하였는데, 이때 젊은 사령관 오사마 빈 자이드에게 군사 지휘권을 맡기면서 어린이, 노약자, 부녀자를 살상하지 말 것, 수목을 해하거나 불사르지 말 것, 과실을 자르지 말 것, 소나 낙타 등 짐승을 도살하지 말 것, 인명과 재산을 보호 할 것, 신앙에 충실할 것 등 전장에서 지켜야 할 규율을 군인들에게 훈시했다. 제2대 칼리파 오마르도 똑 같은 선례를 남겼다. 634년 이슬람군이 예루살렘에 들어 갔을 때 오마르는 모든 종교 공동체에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다. 그들의 생명과 재산은 안전하게 보호되고 예배장소도 그들로부터 결코 빼앗지 않는다고 선언하였으며 그대로 실행했다. 이슬람의 영역에 있는 모든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은 그 사람이 무슬림이든 아니든 고귀한 것으로 보호받는 것이 이슬람의 정신이요, 관행인 것이다. 이슬람은 살인자에 대한 처벌과 전시에서의 전투상황, 정당한 자기 방어 행위와 같은 합법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경우라도 인간생명에 대한 위해행위는 금지하고 있다. “꾸란”은 다음과 같이 명령하고 있다.

“…너희는 진리로써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성스럽게 하신 생명을 살해하지 말라.”

기독교가 전쟁과 적극적 포교활동을 통해 유럽과 미국으로 퍼져 간 것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의 전파도 정복사업과 선교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전역과 중국의 중앙부로부터 캄보디아, 베트남, 타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 등 아시아지역에서 단기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을 받아 들인 것은 무슬림 상인들과 무슬림 수피(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의 개인적 노력 때문 이었다. 또한 이슬람이 표방하고 있는 형제애, 평등, 자유 같은 가치관과 교리의 단순함, 중용주의, 관용성 같은 좋은 점들 때문이었다.

만약 이슬람이 칼로 교세를 넓혔다면 오늘날처럼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하고 자리매김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관용적으로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 주었기 때문에 여러 지역에서 많은 개종자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슬람은 평화와 정의의 종교이다. 기본적으로 종교는 결코 강요해서 성취될 수 없는 것이다. “꾸란”에서도 “종교에는 강요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다. 신앙의 자유는 이슬람의 원리이자 기본정신이다. 설사 일시적으로 강요나 강제에 굴복한다고 해도 그것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서구인들이 이슬람의 원리주의 운동의 확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도전과 위협, 문명의 충돌을 말하는 것은 지나친 자의식이고 방어 의식 때문이라는 것이 현대 이슬람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두 번째 질문인 “이슬람 원리주의자는 모두 테러리스트들인가?” 를 간단히 살펴보자. 사실상 오늘날 서양세계에서 알 카에다와 같은 과격급진 무장세력과 온건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구별하지 않고 마치 무슬림은 모두 이슬람 원리주의자이고 원리주의자는 모두 급진 무장조직의 일원인 것처럼 혼동했기 때문에 생겨난 이슬람 세계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오해가 바로 이것이다. 20세기 초 독립을 쟁취한 신생 아랍 이슬람 국가에서는 ‘근대화가 곧 서구화’라는 개혁적인 사고를 지닌 근대주의자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서구의 제도, 문물, 사상을 받아들여 이를 이용해 교육, 행정, 사회전반에 걸친 개혁을 주도하고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려 했다. 과학과 선진 기술 등 서구문명의 장점을 수렴하여 낙후된 무슬림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추구해 갔던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이들의 근대화 개혁주의는 서구와 손을 잡고 정권을 이어가기를 원하는 서구편향주의자, 세속적 민족주의자, 실용주의자들을 낳았다.

한편 무슬림 사회 일각에서는 서구식의 지나친 세속화에 반대하는 무리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무슬림을 각성시켜 순수 이슬람 원리에 충실한 근본주의적 개혁운동을 펼치고자 했다. 이들은 자본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같은 서구이념들을 배격했다. 또한 무슬림 사회에 만연한 외래적인 요소들을 버리고 원래 이슬람의 이상과 근본으로 되돌아가자며 이슬람 국가 재건을 외쳤다. 이들이 바로 이슬람 원리주의자(근본주의자)들이다. 한마디로 이들은 이슬람 법으로 통치되는 이슬람 국가를 목표로 삼고 이슬람 부흥운동을 전개해가는 이슬람 주의자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원리주의 조직 내부에서 일부 급진 무장세력이 자라났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서구식 실용주의나 세속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서구이념들을 무조건 거부하고 서구적 사고와 삶의 방식에 등을 돌린다. 이들은 매우 소수지만 비밀리에 조직원을 훈련시키고 점조직으로 운영되며 각종 테러행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의 1차 목표는 세속화한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이고, 2차 목표는 이러한 타락한 정부를 지원하는 서양세력에 도전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이들과 원래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원리주의자로 부름으로써 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무슬림 급진 문장세력은 타락한 세속정부나 서방세력을 타도하기 위해서는 폭력이 허용되고 또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집트의 대통령 사다트는 이들의 손에 피살당하였고, 무바라크를 비롯한 여러 세속정권의 지도자들이 아직도 타도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1990년이후 이들이 자행해 온 무모한 테러행위는 서양세계 뿐만 아니라, 무슬림 사회에서 조차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러한 과격 무장 세력들은 이슬람 세계 전체에서 극소수에 불과하다. 일반 무슬림들도 이들의 무모한 테러행위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온건 원리주의 무슬림들은 누구든지 남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폭력을 저지르는 자는 특정이념의 신봉자 일 수는 있어도 진정한 무슬림일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일부 다처제와 무슬림 여성의 낮은 지위 또한 이슬람 세계에 대해 갖는 편견과 오해의 주제이다.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하던 미개사회 제도인 일부다처제가 아직 일부 이슬람 국가에 남아 있기 때문에 무슬림사회가 봉건적이고 남녀불평등 사회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무슬림들은 과거 무슬림 사회의 일부4처제야말로 진정 여성을 위한 제도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많은 현대의 무슬림 법학자들도 이 제도가 차선으로 열려있는 것이지, 무슬림 사회의 보편적 제도는 일부일처제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이 제도는 서기 624년 우후드라는 전투에서 무슬림 군대가 참패한 뒤 생겨났다. 전쟁에서 많은 남자들이 죽자 무슬림 공동체에는 갑자기 수많은 과부와 고아가 발생했다. 이들을 구제하고 보호할 수 있는 해결책이 바로 한 남자가 4명까지 아내를 맞아 들일 수 있는 일부4처제였던 것이다. 이슬람의 일부다처제가 비난을 받는 이유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출현한 이 제도가 현대사회에서도 그대로 존속되고 있는 점 때문이다. 또 비록 나라마다 다르지만 이슬람 국가에서는 아직도 이 제도가 법에 따라 관용으로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근대 이슬람 개혁운동의 선구자인 무함마드 압두(1847~1905)는 이 제도에 관련된 “꾸란”의 구절을 재해석하고 현대 무슬림 사회에서 더 이상 일부 다처제는 존속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만약 너희가 고아들을 바르게 기르지 못할까 두렵다면 그때는 너희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그러한 둘, 셋 또는 네 명의 여인과 결혼하라. 그런데 만약 공평하게 대하지 못할 것 같으면 한 여인만 취하라.”

이와 같이 한 명 이상과 결혼을 한다면 부인 각자에게 공평한 대우와 동등한 정읠르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네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결코 공평하게 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다른 구절을 들어 공평한 대우를 할 수 없음을 밝히고, “꾸란”의 근본취지는 어디까지나 일부일처제라고 말하였다. 이후 튀니지, 터어키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일부다처제를 법으로 금하고 일부일처제를 채택하고 있다.
무슬림들은 다른 무엇보다 이슬람이 평등의 종교임을 강조한다. 인종, 피부색, 언어, 사회적 지위, 빈부의 차이 등으로 차별 받지 않는 사회가 진정한 무슬림 공동체라고 자인한다. 그러나 서방 언론에서는 매우 자주 이슬람 세계가 대표적인 남녀차별 사회인 것 처럼 표현하고 있다. 남녀가 평등하고 상부상조의 관계임을 “꾸란”에서는 “남녀신도들은 서로가 보호자이니라”, “여성은 남성의 옷이고, 남성은 여성의 옷.”이라고 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꾸란”은 종교적인 임무와 수행에서도 남녀평등을 규정하고 있다. 혼인과 이혼, 여성의 재산권, 상속권도 매우 구체적으로 명확히 규정하여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며 남녀의 동등한 지위를 증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은 기능과 일에서 남성과 여성의 유별을 강조한다. 예컨대, 남성은 경제적 부양의 의무가 있고, 여성은 자녀교육과 가정의 보호라는 의무가 있다. 남녀의 권리는 동등하나 각기 역할과 일의 영역은 다르다는 것이다. 이슬람에서 남녀의 지위가 동등함은 “꾸란”에서도 명백히 증명된다.

“그들의 주님께서 그들에게 답하시기를 실로 나는 남자든 여자든 너희들이 행하는 어떤 일도 헛되지 않도록 할 것이로다. 너희는 서로 동등하니라.”

오히려 이슬람은 여성에 관해 기독교 사회에서 알려진 몇 가지 그릇된 관념을 교정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브의 아담 유혹설이다. 이슬람 전통은 이브가 하나님께 불경하고 아담을 유혹해서 신의(神意)를 배반하게 하였고 결국 추방당하게 되었다는 설을 부정한다. “꾸란”은 분명히 둘이 함께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받아 죄를 범했으며, 그 뒤 하나님은 회개한 이들을 용서하셨다. 이슬람 전통에서는 여성이 사악함의 원천이라거나 원죄인이라거나, 특히 남성은 여성의 머리라는 생각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꾸란”은 아담과 아브라함의 아내들, 모세와 예수의 어머니들과 같은 여성들에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이들의 지위를 높였다. 특히 마리아와 사라에게는 천사가 방문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할 만큼 이들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높은 지위였다.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오늘날 몇몇 이슬람 국가들에서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 정치일선의 여성들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방글라데시의 여성 수상 베쿰 칼레다 지아,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그리고 지난 2001년 7월 대통령에 당선된 인도네시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 등이 그 대표적인 경우에 속한다.

이슬람과 이슬람 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서장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먼저 이슬람이 단순한 신앙체계만이 아니라 종교와 세속 모두를 포괄하는 신앙과 실천의 체계라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삶과 종교가 일치하는 독특한 가치관의 세계이기 때문에 무슬림들이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전쟁, 협상 등 모든 생활영역에서 항상 이슬람의 깃발을 앞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교분리의 세속적 가치관 속에서 살아온 서구인들이나 우리가 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이슬람권과 오랫동안 첨예하게 대립해온 서양이나 미국의 언론을 통해 이슬람 세계를 접하고 굴절된 서구의 프리즘으로 그들의 사회를 잘못 들여다보는 사례가 많았다.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제 우리는 나름대로의 객관적 시각을 갖고 이슬람 사회의 제도, 관습, 종교, 문화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처한 특수한 환경과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그들을 볼 수 있는 문화상대주의라는 시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 압둘라직 손주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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