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기본 Basic Islam

기본교리

1. 이슬람이란 어떤 종교인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이슬람은 유일신-우리말로는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뜻에 완전히 순종, 복종하는 종교이다.

‘알라’란 특정한 신의 이름이 아니라 영어로는 the God 에 해당되는, 즉 유일한 신 이라는 뜻이며 ‘이슬람’(어원적 의미로 순종 또는 평화)이란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 뜻을 따름으로써 평화를 얻는 길을 의미한다.

이슬람에서 신격은 하나뿐이며, 그 어떠한 인격도 신격화되거나 신성을 가질 수 없는 철저한 유일신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꾸란(일명 코란)은 구약 신약 등과 함께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받은 성서이고, 무함마드(saw)는 모세, 예수 등 많은 예언자들과 함께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사도이며 동시에 마지막 사도이다.

무슬림(이슬람교도)은 이 선지자들 모두를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존중하고 존경하며 따르지만 그 누구도 신격을 갖춘 대상으로 따르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에서 신격은 하나님 한 분 뿐이다.

무슬림의 신앙은 ‘하나님외에는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도이다’ 라는 신앙 고백(샤하다;shahada)으로서 시작된다.

이슬람의 기본 교리는 여섯가지 믿음과 다섯가지 실천이라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상이 가장 기본적인 이슬람에 대한 소개이다.

2. 이슬람의 개요(Islam at a glance)

1)이슬람(ISLAM)과 무슬림(MUSLIM) 

이슬람(Islam)은 아랍어로 평화, 복종 그리고 순종을 의미한다. 이슬람은 하나님께서 선자자 무함마드(그 분께 하나님의 평화가)께 계시하신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도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무슬림(Muslim)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계시하신 가르침과 예언자의 말씀에 따라 자신의 삶을 완전히 개조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다.

무슬림은 또한 같은 기본원리에 의해 인간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마호메트교 (Muhammadanism) ”는 이슬람에 대한 잘못된 표기이고 이슬람의 진정한 참뜻에 어긋난다.

‘알라 (Allah) ’는 아랍어로 하나님의 올바른 표기이다.

그것은 복수의 형태, 또는 여성형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용어이다.

2)계시의 연속성 

이슬람은 새로운 종교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이슬람은 하나님이 모든 예언자들에게 계시하셨던 동일한 말씀과 인도이다:

말하라: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에게 계시된 것과 아브라함, 이스마일; 이삭, 야곱 그리고 그들의 자손들에게 계시되었던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하나님으로부터 모세, 예수, 그리고 예언자들에게 내려졌던 성서들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언자들을 차별하지 아니하며, 그리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경배를 드리나이다. ” (성 꾸란 3장 84절)

예언자 무함마드(그 분께 하나님의 평화가)에게 계시된 말씀은 포괄적이고 완전하며 최종적인 형태의 이슬람인 것이다.

3)이슬람의 다섯 기둥 

① 신앙 선언(Shahada): 하나님을 제외하고 숭배할 것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심판의 날까지 모든 인류에게 보내진 메시지를 입증하기 위한 최후의 사도 이다.

그의 예언자적 지위는 무슬림들이 그의 모범적인 삶을 본보기로 따르도록 하는데 있다.

② 예배 (Salat): 매일 하나님께 드리는 다섯 차례의 예배가 의무로서 행해진다.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강건하게 하고 활기를 북돋아주며 인간에게 보다 높은 품성을 가지도록 유도한다. 예배는 마음을 정화시키고 악행과 사악한 것에 대한 유혹으로 부터 지켜준다.

③ 단식 (Saum): 라마단 달(이슬람력 9월) 동안 무슬림들은 새벽부터 일몰까지 음식, 음료 그리고 성행위 뿐만 아니라 사악한 의도들과 욕구들을 삼가 한다.

그것은 사랑, 진실 그리고 헌신을 가르친다. 그것은 건전한 사회적 양심, 인내, 욕심 없는 마음과 정신력을 발전시킨다.

④ 자카트 (Zakat) : 공동체에서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종교적인 의무와 속죄의 의미로 한 해 동안의 순수 저축액의 2.5퍼센트를 매년 지불하는 것이다.

⑤ 순례 (Hajj): 성지 메카를 순례하는 것으로서 경제적, 육체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면 일생에 한 번은 수행하여야 한다.

이러한 기둥들 이외에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의지를 이행하는 것으로서 이 또한 숭배의 행위로 인식되며 이를 행하는 것이다.

이슬람은 하나님의 유일성과 위대함에 대한 믿음이 요구되며, 인간으로 하여금 우주의 의미와 그곳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게 해준다.

이러한 믿음은 인간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인식하게 함으로써 모든 두려움과 미신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여준다.

믿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이 행동으로 표현되고 시험을 그쳐야 하는데 이 믿음의 표현이 “이슬람의 다섯 기둥들 ” 이다.

유일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우리가 인류와 모든 사물의 창조자이시고 부양자이신 하나님의 전능하심 아래에서 따르도록 요구한다.

이슬람은 선민사상을 거부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선행이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로 여긴다. 따라서 어떠한 중재자도 없이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성립된다.

4) 인간 : 자주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 

인간은 하나님의 최고 창조물이며 가장 높은 가능성들을 갖고 있으며 자신의 의지, 행동 그리고 선택에 있어 비교적 자유로운 상태에 있다.

하나님은 바른 길을 인도하시고 선지자 무함마드(그 분께 하나님의 평화가)의 삶은 완벽한 모범을 보여준다.

인간의 성공과 구원은 두 가지 모두를 따르는데 있다. 이슬람은 인종, 성별 또는 피부색의 차별 없이 인간의 인격이 동일하며 존엄함을 가르치고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권리를 부여한다.

성 꾸란에 언급되고 예언자 무함마드의 삶에서 예증된 하나님의 계율은 모든 경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높은 신분의 사람들과 미천한 사람들, 왕자들과 농부들, 지배자들과 지배 받는 자들에게 평등하게 적용된다.

5) 성 꾸란(Quran)과 하디스(Hadith): 

성 꾸란은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계시하신 말씀이고 이슬람의 가르침과 율법의 기본적인 원천이다.

꾸란은 모든 면에 있어서 신념, 도덕성, 인류의 역사, 예배, 지식, 지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이에 대한 근본 원리를 다루고 있다.

광범위한 가르침 위에서 사회 정의, 경제, 정치, 법률제정, 법체계, 그리고 건전한 국제 관계의 체제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은 성 꾸란의 중요한 내용이다.

무함마드(그 분께 하나님의 평화가) 자신은 읽거나 기록할 수 없었던 문맹인 이었다.

그러나 성 꾸란은 그의 생존기간 동안 그의 관리 아래 추종자들에 의하여 암기되고 기록되어졌다.

원형 그대로인 완전한 성 꾸란의 구절은 그것이 계시되었던 언어인 아랍어로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될 수 있다.

그 뜻은 많은 언어들로 해설된 해설서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예언자 무함마드(그 분께 하나님의 평화가)의 가르침, 말씀 그리고 행동을 기록한 하디스(HADITH)는 그의 절친한 교우들에 의하여 매우 신중하게 기록되었고 수집되었으며

성 꾸란의 절들을 해설하고 상세히 설명한다.

6) 숭배의 개념: 

이슬람은 단순한 의식주의를 가르치거나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이슬람은 의도와 행동을 강조한다.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삶의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행동하고 선을 요구하며 악행과 박해를 금하며 자선과 정의를 실행하고 인류에게 봉사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성 꾸란은 이러한 개념을 다음과 같이 숭고하게 제시하고 있다

너희들이 얼굴을 동과 서로 돌리는 것만이 올바른 신앙은 아니니라; 그러나 하나님과 최후의 심판일, 천사들, 성서들 그리고 선지자들을 믿고; 하나님을 위한 사랑으로 너희들의 친척, 고아들, 가난한 사람들, 여행자들,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 그리고 노예들의 몸값을 위하여 너희들의 재산을 사용하며; 꾸준히 예배를 드리고, 정기적으로 자선을 행하며 그리고 너희가 맺은 계약들을 이행하고; 고통과 역경 그리고 공포의 모든 시기를 통하여 변치 않고 인내하는 것은 옳은 일이니라. 그와 같은 사람들은 진실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니라.(성 꾸란 2장 177절)

7) 이슬람에서 삶의 방식 

이슬람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명확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이슬람의 가르침은 포괄적이고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도덕적 그리고 정신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성 꾸란은 인류에게 지구상에서 자신과 일가 친척, 공동체, 나아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가르치며 창조주에 대한 자신의 생활과 의무를 상기 시켜 준다.

인간은 목적이 있는 삶에 대한 기본적인 지침들을 부여 받고, 이러한 높은 이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삶 속에서 도전이 주어져 있다.

이슬람에서 인간의 삶은 전체적으로 통합된 단일체이며 단편화 된 경쟁하는 부분들의 모임이 아니다

그러므로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은 인간의 삶에서 분리된 부분이 될 수 없고 결합되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8) 역사적인 시각 

무함마드(그 분께 하나님의 평화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도시인 메카(Makkah)의 고귀한 가문에서 서기 570년에 태어났다.

그는 40세에 최초로 계시를 받았으며, 그가 이슬람을 전도하기 시작하자 그의 추종자들은 박해를 받았고 모진 고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아라비아의 또 다른 도시인 메디나(Madinah)로 이주하도록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그는 23년의 짧은 기간동안 예언자적 지위인 그의 사명을 완수하고 63세에 서거하였다.

그는 완벽한 삶을 영위하였고 그의 삶은 성 꾸란의 가르침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을 위한 모범이 될 수 있었다.

9) 이슬람의 이성적인 접근 

진실을 표현하는 명확하고 솔직한 방법을 갖고 있는 이슬람은 지식을 추구하는 누구에게도 이성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삶의 모든 문제를 위한 해결책이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모든 면을 찬미함으로써 보다 좋고 완성된 삶을 향한 안내자이기 때문이다.

10) 이슬람 – 현대사회의 병폐에 대한 해결책 

인류의 형제애 : 선진국들은 인간을 달에 보낼 수 있지만 인간이 같은 인간을 미워하고 싸우는 것을 중단시킬 수 없다.

지난 1,400년에 걸쳐 이슬람은 어떻게 인종적 편견이 종말을 고할 수 있는지 실제로 보여 주었다.

또한, 진정한 형제애의 이슬람적 기적은 매년 성지 순례(Hajj)를 통하여 모든 인종들과 국가들이 차별과 편견을 버리고 하나된 모습으로 순례에 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족: 문명의 기본적인 단위인 가족이 모든 서구 사회에서 붕괴되고 있다.

이슬람의 가족 체제는 남편, 아내, 자녀 그리고 친척의 권한에 대하여 훌륭한 평형상태를 유지하도록 가르친다.

이슬람은 잘 구성된 가족 체제 안에서 인간의 애타심, 관대함 그리고 사랑을 권장한다.

11) 조화로운 인생관 

인간들은 그들의 인생관에 따라 산다. 세속적인 사회의 비극은 삶의 다른 면을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세속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 과학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은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은 이러한 갈등을 끝내고 삶에 대한 인간의 통찰력에 조화를 이루게 한다.

3. 이슬람의 교리-5주(五柱)

1) 신앙의 고백(Shahadah)

“Asshuhadu an la ilaha ill-Allah, wa asshuhadu anna Muhammadan-Rasulullah”
나는 하나님 외에 신이 없음을 증언합니다,
또한 나는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사도임을 증언합니다

이 두 구절은 이슬람의 가장 중요한 교리이자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구절의 내용을 부정하고는 이슬람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

첫 구절은 알라(하나님)의 유일성을 강조하는 말이고 두 번째 구절은 무함마드가 사도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무슬림들은 예배드릴 때 뿐 아니라 하루에도 몇 차례씩 습관적으로 이 구절의 암송을 반복한다. 또한 비무슬림이 이슬람교에 입교하고자 할 때는 누구나 이 구절을 선서함으로써 무슬림이 될 수 있다.

2) 예배 (Salah)

어느 종교나 신에 대한 일정한 숭배의식이 존재한다. 무슬림들은 매일 5번씩 정해진 시간에 – 일출 전 새벽, 정오, 오후, 일몰 후, 밤 – 메카를 향해 예배를 드린다.

하루 다섯 차례의 예배가 이슬람이 생활 속의 종교로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정확한 예배 시간을 맞추려는 노력과 메카를 향한 예배 방향을 맞추려는 노력이 이슬람의 천문학과 기하학을 발달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항상 ‘우두’라고 불리는 세정(洗淨)을 행하는데 이는 신체의 청결 뿐 아니라, 마음의 청결도 포함한다.

무슬림들은 어디서나 예배드릴 수 있으나, 남자들은 보통 집단으로 모스크에서 행하도록 권장하고 있으며, 여성은 보통 가정에서 한다. 매주 금요일에는 모스크에서 합동예배를 드린다.

3) 단식 (Sawm)

무슬림은 이슬람력 9월(라마단) 한 달간 일출부터 일몰까지의 낮 시간 동안 단식을 해야한다.

이슬람에서의 단식은 단지 먹고 마시기 뿐 아니라 흡연, 거친 말과 행동을 삼가며 심지어는 성행위까지 자제한다.

타종교에서의 금식은 일정 기간 동안 물만 먹고 위를 완전히 비워 신체적·물질적 활동을 중지시킴으로써 종교적·정신적 성취감을 증대시킨다는 다분히 개인적인 목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에서의 단식은 먹는 일과 굶는 일을 반복함으로써 한달 동안 매일 비슷한 시간에 배고픔의 고통을 반복해서 느낀다.

즉, 이 배고픔의 고통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가난한 자의 고통을 알게 해주고 나아가서 여유 있는 사람들이 부족한 사람들을 돕도록 유도하는 사회적인 목적을 갖고 있다.

따라서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며, 단식 행위를 공유함으로써 무슬림 공동체의 결속을 꾀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라마단 기간에 병에 걸렸거나 장거리 여행중인 무슬림은 단식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적당한 시간이 될 때까지 연기할 수 있다.

노약자, 임산부, 수유 중인 어머니, 월경 중인 여성,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병사들, 만성적인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무슬림은 면제된다.

단식이 끝난 다음날인 이슬람력 10월1일은 파제절(罷祭節, Eid al-Fitr)이라고 불리는 이슬람의 2대 축제 중의 하나가 거행된다.

4) 희사 (Zakah)

기독교의 십일조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에서는 1/40을 희사로 바친다. 그러나 십일조와 이슬람의 희사제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기독교의 십일조와 달리 이슬람의 희사제도는 자기 수입의 1/40이 아니라 자기 순수입의 1/40을 희사한다는 점이 다르다.

이슬람에서는 꼭 물질적인 희사 뿐 아니라, 정신적인 구호 행위도 희사로 간주한다.

예컨데, 다른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거나, 언제나 밝은 웃음으로 인사함으로써 공동체에 유익한 행위를 한다거나, 몸이 불편한 장애자들을 돕는 행위 등도 희사에 들어간다.

따라서 수입이 없거나 오히려 부족한 사람들은 물질적 희사보다는 정신적 희사로 대신함으로써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열등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꾸란에는 이렇게 모금된 희사금을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 재난을 당한 사람들, 여행자들, 이슬람 선교에 종사하는 사람들, 이슬람을 공부하는 유학생들 등이 이에 해당된다.

5) 성지순례 (Hajj)

다섯 번째 의무는 성지순례(hajj)로서 이슬람력 12월의 메카 순례를 말한다. 모든 성인 무슬림은 신체적 건강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자에 한해 적어도 일생에 한번은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를 순례해야만 한다.

순례자는 바느질하지 않은 천 2장으로 몸을 감싸고 순례한다.

메카의 카바 성전 주위를 돌고, 그 벽 한 모퉁이에 있는 검은 돌에 입을 맞추고, 사파(Safa)와 마르와(Marwa) 언덕을 돌고, 악마를 나타내는 미나(Mina) 근처에 돌을 던지고, 그곳에서 양을 희생으로 바치며, 아라파트(Arafat) 평원에 모이는 등의 일정한 의식이 정해져 있다.

예를 들면, 사파와 마르와 사이를 일곱 번 도는 것은 이스마일의 어머니 하갈이 메카로 이주한 후, 미친 듯이 물을 찾아다닌 것을 기리기 위한 것이며, 양을 바치는 것은 아브라함이 신의 명령에 따라 이스마일(무슬림은 이삭이 아니었다고 믿는다)을 희생으로 바치려 했던 사실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이 양을 희생으로 바치는 풍습이 이슬람의 2대 축제 가운데 하나인 희생제(Eid al-Adha)를 탄생시켰다.

역사를 통해 순례의식은 무슬림을 단결하게 하였고, 그들 사이의 인종적, 언어적, 그리고 정치적 장벽을 허무는데 기여했다.

4. 6신(六信) : Iman

1) 하나님 (알라, Allah)

신은 전지전능하며, 과거의 것, 그리고 지금의 것, 그리고 미래에 올 것을 모두 만드신 창조자이며, 선과 악을 구분하는 정의로운 심판자이며, 예언자와 성전을 통해 인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자비로운 안내자이다. 신에게는 필적할 아무런 상대도, 협력자도, 자손도 없으며, 그의 권능을 막을 어떤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하신 하나님(Allah)에 대한 믿음

유일하신 하나님(Allah)에 대한 믿음일러 가로되, 하나님은 오직 한분 이시고 영원하시며 성부와 성자를 두지 않으셨으며, 그분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느니라 /꾸란112장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수호하시니, 하늘과 땅의 열쇠들이 그 분의 것이로다 /꾸란 39장62,63절

꾸란에서 위와 같이 언급하고 있듯이 세상 모든 삼라만상의 존재와 소멸은 바로 그 분, 하나뿐인 신으로부터 시작되며 결정지어지고 또한 그 모든 것을 거두는 것도 그분이다. 또한 이 모든 권능은 오직 한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이를 대신할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음을 “라 일라하 일랄라 /La Ilaha Illallah : 그분외에는 신이 없다”이 구절을 통해 사도 무함마드(그분에게 평화가) 또한 모든 이에게 그 사실을 기억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신앙인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이슬람 사상의 바탕이며 기둥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에서는 ‘유일신’, 그 존재를 의심하거나 비하 혹은 인격화시키는 것을 용서받을수 없는 가장 큰 죄로 간주한다.

2) 천사들

무슬림들은 신의 창조물들 중 모두가 인간에게 보이거나 들리거나 느껴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예를 들어 “진(Jinn)”이라고 불리는 영마(靈魔)는 지상에서 많은 선과 악을 행하며 이는 꾸란에 나타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다 강력히 신의 계획을 따르는 피조물은 신의 심부름꾼에 해당하는 천사들이다. 천사는 남녀의 구별이 없으며 인간보다도 낮게 창조되었다.

신은 꾸란을 직접 무함마드에게 계시한 것이 아니다. 천사인 가브리엘을 통해 꾸란을 내려보냈다. 이 천사의 개념은 유대교나 기독교의 개념과 거의 동일하다.

대천사 가브리엘이나 미카엘이 있고 최후의 심판일을 알리기 위해 나팔을 부는 이스라필 천사도 있다. 아랍어로 이브리스(Iblis) 또는 알 샤이탄(al-Shaytan)이라 불리는 악마는 원래 천사였으나, 아담을 경배하라는 신의 계율을 조롱함으로써 신의 은총에서 버림받아 인류를 타락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

하나님(Allah)의 천사(Al malaika)에 대한 믿음

천사(Al malaika)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로서 인간의 능력이나 어떠한 특별한 과학적 지식 또는 특별한 육감으로는 그 존재 유무에 대해 증거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존재를 부정하는 것 또한 큰 죄임을 꾸란에서는 밝히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주지해야 할 것은 ‘천사’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피조물로서 그 존재를 믿어야 하지만 그것이 경배의 대상이나 구원의 주체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인간과는 달리 천사에게는 선택을 위한 자유의지가 부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서는 물질이나 육체적 욕망으로 인한 범죄의 속성을 찾아볼 수 없으며 그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뿐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에 의해 창조되어진 피조물로서 다음과 같이 구분되어 진다.

가브리엘 /Jabril
모든 천사들을 관장/ 사도와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한다.

이스라필 /Israfil
최후의 심판 때 나팔을 두 번 불게 되는데 첫번째 나팔을 울려 지상의 모든 생명체를 죽음에 이르게 하며 두 번째 나팔은 최후의 심판을 위해 죽었던 모든 생명체를 부활케 한다

메카일 /Mackerel
창조되어진 모든 세상과 자연의 섭리를 관리한다

이즈라일 /Azrail
인간의 영혼을 거두는 역할을 한다

자비니스 /Zabanis
지옥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리드완 /Ridwan
천국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문카 , 니키르 , 무바쉬르 , 바쉬르
최후의 심판 날까지 인간이 지은 죄만큼 그들을 단죄하는 역할을 한다.

아티드 , 라킵
(인간에겐 수많은 천사들이 항상 동행하지만 그 중에 특별히) 인간에게서 비롯되는 모든 선과 악을 기록하는 역할을 한다

3) 성서들

무슬림들은 신이 인간들 중에 정의로운 한사람을 예언자로 선정해 그의 입을 통해 복음을 전하도록 했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복음들이 성서가 되었다.

인간이 타락하고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마다 신은 예언자들을 통해 복음을 내렸다. 언제 어떤 민족들에게 어떤 예언자들을 통해 어떤 복음들이 내렸는지 우리는 다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부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다윗에 의해 전해진 시편, 모세가 유대인들에게 전한 토라(Torah, 구약), 예수가 기독교인들에게 전한 인질(Inzil, 신약),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함마드가 무슬림에게 전한 꾸란이 그것이다.

하지만 무함마드 이전에 계시된 성서들은 번역과정을 통해서 내용이 변질되었거나 위정자들이 정치적·경제적 목적으로 일부 내용에 수정을 가했기 때문에 그것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무슬림들은 유대인 자신들이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고 묘사하기 위해서 구약(Torah)의 몇 구절을 바꾸었거나, 또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신이라고 증명하기 위해 복음서를 다시 쓴 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

오직 꾸란만이 계시된 이후부터 한 점 한획 의 변질없이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진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꾸란은 계시된 장소에 따라 메카에서 계시 된 장과 메디나에서 계시 된 장으로 나뉜다. 뒷부분의 짧은 장들이 주로 메카에서 계시된 장들로서 길이가 짧은 대신 상징적·은유적인 표현이 많아 이해하기 어려우며 신의 전능과 다가오는 심판의 날에 대한 경고를 강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앞 부분의 긴 장들은 메디나에서 계시된 장들로서 실생활의 구체적인 규범들로 가득 차있다.

꾸란은 아랍어로 계시되어졌지만 그것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내용의 오역이나 변질을 방지하기 위해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렇게 번역된 것은 단지 ‘주해서’ 혹은 ‘해설서’로 간주될 뿐이다.

꾸란은 수많은 아랍 민족들을 시·공을 초월해 하나로 묶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즉, 꾸란의 언어는 북 아프리카 서쪽 끝에서부터 아라비아 남부의 예멘에 이르기까지 아랍어를 사용하는 20여 개국의 표준어일 뿐 아니라, 1400여 년 동안 변함없이 꾸준하게 읽혀져 내려왔기 때문에 계시 당시의 아랍인이나 현대의 아랍인들이 별 어려움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하나님의 성서(Al Khutub)에 대한 믿음

내가 너희에게 복음을 내려 보낼 것이니 나의 복음을 따르는 자 두려움도 그리고 슬픔도 없을 것이며, 방황하지도 불평하지도 않을 것이라 /꾸란 2장38절, 20장123절

하나님으로 부터 지상에 내려진 계시(성서)는 총 10.000편의 수흐프와 4권의 책(Khutub)이 있었으나 현재 대부분은 안타깝게도 거의 대부분은 유실되었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성서의 대부분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 받은 원서라 할 수 없으며 그에 대한 일종의 번역서 혹은 개정서 라 밖에 할 수 없다.

그 예로써 아브라함에게 계시된 수흐프는 현재 지구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모세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도 그 원본은 없는 수정 보완서 일 뿐이다.

또한 사도 예수에게 계시된 신약(Injil)은 새로운 것에 대한 계시가 아니며 이는 이전의 사도들에게 내려 졌으나 분실 또는 손상되어진 구약 서를 다시 회복코자 계시되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역사의 흐름을 거쳐 많은 부분이 또다시 수정 왜곡됨으로 인해 현존의 성서는 그 정통성을 상실했다.

이에 하나님께서 이러한 성서의 정통성과 그 의미를 위와 같은 성서들과는 달리 변질 없이 그 정통성 지키고자 내리신 것이 인간 세계의 마지막 성서인 꾸란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성서를 내려주시고 이것이 변질되지않게지켜주실 것을 약속하고 계심을 꾸란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꾸란85장22절)

이와 같은 이유로 해서 1천4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꾸란 낭송시 원문 그대로의 원어로 읽기를 권장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이며 하나님의 약속대로, 계시받은 꾸란의 원본은 일 점 일 획의 변환 없이 그 정통성을 유지하며 보존되고 있다

이같은 성서들이 변질되었건 변질되지 않았건 간에 최초에는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성서들임을 믿는 것이 무슬림의 세번째 믿음이다.

4 ) 사도들

사도(使徒), 예언자 혹은 선지자라 함은 신의 복음을 인간들에게 전하기 위해 신에 의해 선택된 인간을 말한다. 이슬람은 무함마드가 마지막 예언자임을 강조하지만, 구약, 신약, 꾸란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 즉 아담, 노아, 아브라함, 요나, 욥, 등을 인정한다. 무슬림들은 유대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을 이단으로 규정함에도 불구하고 모세나 예수 역시 예언자로 간주해 존경과 찬미를 보낸다. 꾸란은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것을 인정하지만,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거나 또는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한다. 또한 심판의 날까지 더 이상의 예언자는 오지 않는다.

사도와 선지자에 대한 믿음

사도(Al Rasul)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되어진 인간을 뜻하는 단어로 이는 선택된 사람의 신앙심이나 사상 또는 그 사람의 배경이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오로지 하나님의 특별한 뜻, 섭리에 의해 결정되어 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듯이 그분으로부터 선택되어진 사도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하나님의 사도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역시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비록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되어진 사도라 할지라도 그들 또한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경배의 대상도 구원의 주체자도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선택을 받은 사도들에 대한 그 믿음에 차별을 두어서도 안되며, 받은 계시에 대하여 인간으로서 그 경중을 따져서도 안된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하나님의 말씀이며 단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역할의 차이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해 보면 수 많은 사도들이 그들의 발자취를 남기고 있으며, 그 수에 대해서는 정확한 숫자가 전해지고 있지는 않지만 대략 124,000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그리고 무함마드등이 있는데 이중 아브라함은 신의 친구(Khalil)로 택함을 받았을 정도로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를 경배하였으며(꾸란4장 125절), 천사 가브리엘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모세5경/토라를 계시 받은 모세(Kalimullah:신과 직접 대화를 나눈 사람),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꾸란3장 47절) 신의 뜻에 따라 승천(꾸란4장 158절)하기 까지 많은 기적을 이룬 사도 예수 등이 꾸란에 잘 명시되어 있다.

이중 특히 사도 무함마드는 최후의 사도로서 이전의 사도들에게 계시되었으나 그후 많은 왜곡을 통해 변질되었던 성서를 온전하게 회복, 완성하셨으며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경배의 길을 가르칠 것을 계시받았다.

5) 최후심판일 (來世)

최후의 심판 일을 믿는다는 것은 내세를 믿는다는 말과 같다. 이 운명의 날에 모든 산 자들은 죽을 것이며, 그들은 그 이전에 죽은 자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행한 선과 악한 행위를 심판 받기 위해 신의 권좌 앞에 소환될 것이다. 그들의 죄과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결정된다.

꾸란은 천국을 시원한 샘물들과 풍성한 음식과 음료 그리고 아름다운 시종들이 있는 그늘진 정원이라고 묘사한다.

지옥은 무서운 짐승들, 잔인한 고문, 유독한 안개, 썩은 음식과 끊는 물만 먹고 마실 수 있는 곳이다. 지옥에는 평화도 조화도 없는 곳이며, 신은 나타나지 않고 형벌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곳이다.

최후의 심판과 부활에 대한 믿음

일반적으로 이슬람 사상에서는 인간의 육체적 발달 과정을 3단계로 보는데 그 첫번째가 흙의 단계(꾸란 )이며 두 번째가 자궁내의 단계(꾸란 ) 그리고 마지막이 탄생의 단계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적 단계 또한 생명이 주체이기는 하지만 아직 자의식이 없는 상태로 모체에 있는 시기, 그 후 호흡을 갖고 살다 죽음을 통해 무덤에 이르는 중단단계, 그리고 마지막 부활의 단계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위에서 구분한 바, 영혼의 중간 단계에서 마지막 단계로 이르는 과정에서 인간은 누구나 그 삶에 대해 옳고 그름을 행한 대가를 심판 받게 되는데 이는 마지막 단계에 있는 최후의 심판과는 또 다른 의미로써 이 중간 단계에서 내려지는 심판은 인간 사회의 법처럼 상황에 따라 또는 지휘나 가진 것에 따라 타협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행한 만큼 그대로 심판 받게 되는 것이다.

그 후 우리는 영혼의 마지막 단계의 최후의 심판 날에 이르게 되는데 이 시기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단정지을수 없으며 이는 창조하시고 거두시는 절대자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다.(꾸란40장59절,34장3절,7장187절) 심판의 날에 모든 인간은 그가 생애에 행했던 모든 선행과 악업에 따라 분류되어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워진다.

6) 정명(定命)

인간의 운명은 하나님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Free Will)’를 중요시한다.

즉, 다른 피조물과 달리 신은 인간에게만 ‘이성’이라는 축복을 내렸기 때문에 그 이성에 따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중시함과 동시에 자유의지의 선악에 따라 최후의 심판 일에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믿음

현세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많은 부분을 과학에 의지하며 살고 있다.

과학의 발전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을 이루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고 있으며 그로 인해 많은 부분에 있어 삶의 질은 어느정도 향상되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좀더 본질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과연 과학의 발전이 언제나,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삶의 질의 향상이라기 보다는 단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과정상의 시간 단축 즉 편리성에 대한 기술적 진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답은 아닐는지… 또한 모든 사람들이 마치 유토피아라도 건설할 수 있는 과학과 전문 기술의 세기가 도래한양 기다려 마지않던 21세기가 되었지만 우리가 기대했던 것 만큼 그에 따른 많은 문제 또한 발생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굳이 그 예를 나열하지 않아도 연일 매스컴을 통해 귀가 따갑도록 접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의 이러한 노력들 뒤엔 자연의 섭리, 인간의 섭리와 같은, 이 세상을 운용하고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섭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그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한 집착이 있는 것은 아닐지..

물론 발전을 위한 노력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실제로 이슬람에서는 현세의 삶도 내세의 삶만큼이나 중요시 하며 현세의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을 권고한다)

그러나 과연 발전을 위한 노력만큼이나 그 가치들이 함께 고려되고 있는가? 과연 무엇을 위한 발전이며 그 결과가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어쩔 수 없는 유한적 생명체이다. 그러므로 주어진 시간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도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특권이며 동시에 신성히 지켜야 할 의무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을 활용하되 그 권리와 의무의 한계를 벗어나려 해서는 안되며 노력한다 해서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순간도 또한 우리의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우리의 자손들이 그럴 것 처럼 시공을 초월한 하나님의 운영섭리에 속하는 피조물이며 그것이 인간에게 허락된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인정하고 믿으며 그 안에서 노력할 때에 우리의 방향을 올바로 볼 수 있으며 발전에 대한 가치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5. 이슬람의 도덕 체제(Moral System of Islam)

이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준수되고 존중되어야 하는 인간을 위한 보편적 기본 권리들을 총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권리를 성취하기 위하여 이슬람은 법적 보장 조항 뿐만 아니라 매우 효과적인 도덕 체제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개인이나 사회의 복지를 가져오는 것은 무엇이든 이슬람에서 도덕적으로 선한 것이고 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 도덕적으로 나쁜 것이다.

이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에 아주 많은 중요성을 두고 있어서 지나친 형식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성 꾸란은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너희들이 너희들의 얼굴을 동과 서로 돌리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과 최후의 심판일, 천사들, 성서 그리고 선지자들을 믿고; 하나님을 위한 사랑으로 너희들의 친척, 고아들, 가난한 사람들, 여행자들,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 그리고 노예들의 몸값을 위하여 너희들의 재산을 사용하며; 꾸준히 예배를 드리고, 정기적으로 자선을 행하며 그리고 너희가 맺은 계약들을 이행하고; 고통과 역경 그리고 공포의 모든 시기를 통하여 변치 않고 인내하는 것은 옳은 일이니라. 그와 같은 사람들은 진실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니라 ”.( 2장 177절)

우리는 이러한 성 꾸란 구절에서 진실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 대한 훌륭한 가르침을 받았다.

이러한 사람은 유익한 규정들을 따라야 하지만 그는 하나님과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응시해야 한다.

우리는 4가지 주된 항목들을 부여 받았다:

1) 우리의 신앙은 진실되고 충심으로부터 나온 것이어야 한다;

2) 주위 사람들에 대한 자선의 행위로 우리의 신앙을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3) 우리는 사회의 조직체를 돕는 훌륭한 시민들이어야 한다.

4) 각자의 정신은 어떤 상황에서 확고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행위의 형태가 선하고 악한 것으로 판단되고 구분되는 기준이다. 이러한 판단의 기준은 모든 도덕적 행위에 대한 중심역할을 한다.

어떠한 도덕적인 명령들을 내리기 이전에 이슬람은 인간의 마음속에 자신의 행동들이 언제 어디서든지 자신을 지켜보시는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다는 확신을 확고히 심어주려고 노력한다.

인간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숨길 수 있으나 하나님으로부터는 숨을 수 없고, 인간은 모든 사람들을 기만할 수 있으나 하나님을 기만할 수 없으며, 인간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수중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수중으로부터는 달아날 수 없다.

따라서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의 만족에 둠으로써 이슬람은 최고의 도덕적 가치에 기준을 둔다. 이것은 인류의 도덕적 발전을 위한 무제한의 방법들을 필연적으로 제공하게 한다.

하나님의 계시를 지식의 원천으로 함으로써 올바른 조정과, 적용, 혁신의 합리적인 여지를 제공해 도덕적인 기준에 영속성과 확실성을 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두려움 안에서 도덕성을 허가해 주는데, 그 사랑과 두려움은 인간으로 하여금 어떠한 외적 압력 없이도 도덕률에 따르도록 한다.

이슬람은 하나님과 심판의 날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한 인간에게 진지함과 성실함 그리고 모든 진심을 다하여 도덕적인 행위를 채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길을 제시해 준다.

이슬람은 창의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어떠한 새로운 도덕적 가치도 추구하지 않으며, 잘 알려진 도덕적 규범의 중요성을 최소화하려고 시도하지도 않는다,

또한 어떤 도덕적 가치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과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유없이 다른 것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도덕적 가치를 채택하고 균형과 조화로운 의식으로 삶의 총체적인 계획 속에서 각자에게 적합한 위치와 기능을 부여한다.

그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관계, 사회적 행동 그리고 정치적 · 경제적 · 법률적 · 교육적 · 사회적 관계 등 인간의 개인적 혹은 집단적인 삶의 영역을 넓혀준다.

그것은 가정으로부터 사회까지, 식탁에서 전쟁터 그리고 평화 회담까지, 문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의 삶을 망라하고 있다.

요컨대 삶의 어떠한 영역도 이슬람의 도덕적 원리의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적용으로부터 제외되지 않는다.

그것은 도덕성이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며 이 세상의 일들이 이기적인 욕구나 작은 이익에 의하여 좌우되는 대신에 도덕적 기준에 의하여 통제되도록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선에 기반하고 모든 악으로부터 벗어난 삶의 체제를 인간에게 제시해 준다. 그것은 사람들이 선을 행하고 악을 금하기 위하여 미덕을 강조 할 뿐 아니라 해악을 근절하도록 호소한다.

그것은 양심의 판단이 우선하여야 하고 미덕이 악의 밑에 놓여 복종 되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러한 사명에 부응하는 사람들은 함께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무슬림이라는 이름을 부여 받게 된다.

이러한 공동체(움마 : Ummah)의 설립을 강조하는 유일한 목적은 그것이 선을 확립하고 강화하며 악을 금하고 근절시키기 위한 조직적인 노력을 기울이는데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슬림의 삶의 다양한 면들을 위한 이슬람의 기본적인 도덕적 가르침 몇 가지를 제공한다.

그것들은 무슬림의 사회적인 책임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도덕적 행동의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의 인식

성 꾸란은 무슬림의 가장 높은 자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너희들 중에서 가장 영광을 받을 자는 너희들 중에서 가장 의로운 자(들)이니라. ”( 49장 13절)

겸손, 정숙, 열정과 욕구의 억제, 진실성, 성실, 인내, 불변성, 그리고 약속 이행은 성 꾸란에서 다시금 강조된 도덕적 가치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내하는 자들을 사랑하시느니라. ”(3장 146절)

“너희 주님의 용서를 받기 위한 노력을 서둘러라, 그리고 천국은 하늘과 땅(의 전체)의 넓이가 같으니, 정의로운 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것이니라 –

부유할 때나 또는 역경에 처하였을 때나 (아낌없이) 자선을 베풀고;

분노를 참으며,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는 자들이니라 – 하나님은 선행하는 자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니라 – (3장 133-134절)

“오 나의 아들아! 규칙적인 예배를 행하고, 올바른 것을 요구하며, 부정한 것을 금하라; 그리고 무슨 일이 너에게 일어나든 부단히 인내하라;

이것이 일상의 업무(의 처리) 속에 있는 (의지의) 견고함이기 때문이니라.

“(자만으로) 사람들에게 뽐내지 말고, 이세상에서 오만하게 걷지도 말아라:

하나님은 거만하게 자랑하는 자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니라.

“걸음걸이를 적절히 하고 너의 목소리를 낮춰라; 틀림없이 가장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당나귀들의 울음소리이기 때문이니라. ”( 31장 17-19장)

무슬림의 도덕적 품행에 대해 선지자 무함마드(그 분께 하나님의 평화가)께서 말씀하시기를 :

“나의 부양자이신 하나님은 나에게 9가지 명령을 부여하셨다: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든 하나님을 늘 의식하고; 화가 나던 기쁘든 간에 공정하게 말하고;

가난할 때나 부유할 때나 늘 절제를 보이며; 나와 사이가 갈라진 사람들과 우정을 회복하고; 나를 거부하는 자에게 베풀며; 나의 침묵은 생각으로 가득 채워져야 하고; 내가 바라보는 것은 경고가 되며;

나는 옳은 것을 명령해야 하느니라. ”

사회적인 책임

사회적인 책임에 관한 이슬람의 가르침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친절과 배려에 기초하고있다.

친절의 범위가 광범위 하다 보니 자칫 특수한 상황 속에서 무시되기 쉽기 때문에 이슬람은 친절의 특수한 행위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관계의 책임과 권리를 규정하고있다.

게다가 관계의 범위가 넓어지는 가운데 우리의 첫번째 의무는 우리의 직계 가족인 부모, 남편 또는 아내 그리고 자녀들에게 있고, 그 다음 우리의 친척들, 이웃들, 친구들과 친지들, 고아들과 과부들, 공동체의 불우한 사람들, 우리의 동료 무슬림들, 우리와 같은 인간들과 동물들에게 있다.

부모

부모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이슬람의 가르침에서 매우 강조되고 있으며 무슬림의 신앙 표현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너의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어 너희는 그분 외에는 아무도 섬기지 말고, 너희는 부모를 사랑하라 하셨느니라.

그들 중 한 사람 또는 두 사람모두가 노년에 이르렀을 때, 그들에게 경멸하는 말을 하지 말고, 그들을 배척하지 말며,

그들에게 존경하는 말을 하라. 그리고 친절로서 그들에게 겸손의 날개를 낮추고, 말하라: “나의 하나님! 그들이 제가 어렸을 때 저를 소중히 길렀던 것과 똑 같이 그들에게 당신의 자비를 베푸소서. ”(17장 23-24절)

다른 친척들

“그리고 친척들과, 가난한 자들, 그리고 여행자들에게 그들의 합당한 권리를 제공하라: 그러나 재산을 탕진하는 자와 같이 낭비하지 말지어다. ” (17장 26절)

이웃들

선지자 무함마드(그 분에게 하나님의 평화가)께서 말씀하시기를 :

“자신의 곁에 배고픈 이웃이 있을 때 배부르게 먹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며; 그리고: 그는 이웃들이 자신의 부정한 행동으로 인하여 상처 입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않는 자이다. ”

실제로 성 꾸란과 순나(Sunnah : 선지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무슬림은 자신의 부모, 친척들 그리고 이웃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 동물들 그리고 유용한 나무들과 식물들에게도 자신의 도덕적인 책임을 이행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유희를 위하여 새와 동물을 사냥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열매를 맺는 나무와 식물을 자르는 것은 아주 절박한 필요가 있지 않는 한 금지되어있다.

따라서 이슬람은 기본적인 도덕적 특성에 기초해 보다 높은 도덕 체제를 건설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인류는 자신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슬람은 자기 본위의 자만, 포악 행위, 방자함 그리고 자제심 결여로부터 정신을 정화시킨다.

이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만들어 내며 자신의 이상에 충실하며, 신앙심과 절제 그리고 수양을 갖추고 거짓과 타협하지 않는 사람을 만들어 낸다.

이슬람은 도덕적인 책임감을 이끌어내고 자제심의 능력을 배양하여 준다.

이슬람은 모든 상황에서 모든 창조물에 대한 친절, 관용, 자비, 동정, 평화, 사욕이 없는 선의, 양심적인 공정함과 진실함을 갖게 해 준다. 이슬람은 오로지 선 (善) 만이 기대될 수 있는 고상한 자질들을 육성한다.

6. 이슬람에서 하나님의 개념(Concept Of God In Islam)

모든 언어에는 하나님과 잡신에 관하여 사용되는 말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표현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슬람에서 하나님(Allah)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하나님은 유일한 진리에 대한 고유 이름이다. 그 외의 어느 것도 하나님으로 부를 수 없다.

그 말은 복수형 또는 성별 (性別) 을 갖고있지 않다. 이것은 복수형인 신들(gods) 또는 여성형으로 여신(goddess)이 만들어질 수 있는 신(god)이란 단어와 비교할 때 이것의 유일성을 보여준다.

하나님(Allah)이 예수(그 분께 하나님의 평화가)의 언어이고 아랍어(Arabic)의 자매(姉妹) 언어인, 아람어(Aramaic)에서 하나님(God)의 고유의 이름을 주지하는 것은 흥미롭다.

유일하신 진리의 하나님은 이슬람이 하나님과 관계가 있다는 개념을 나타내 준다.

무슬림에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the Almighty)이시고, 우주의 창조자 이시며 부양자(Sustainer)이시고, 그 분과 유사한 자가 없으며 아무것도 그 분과 비교될 수 없다.

선지자 무함마드(그 분께 하나님의 평화가)는 자신과 같은 시대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에 관하여 질문 받았고,

그 대답은 하나님의 유일성의 본질 또는 일신론의 좌우명으로 간주되는 것으로, 성 꾸란에서 짧은 장의 형태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되었다. 이것은 성 꾸란 112장으로써 다음과 같다: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그 분은 낳지도 나아지지도 않으셨으니; 그 분과 어떤 같은 것도 없나니. ”(성 꾸란 112장 1-4절)

어떤 비무슬림들은 이슬람에서의 하나님은 완전히 복종하기를 요구하는 엄격하고 무자비하고, 그 분은 애정이 깊으시거나 친절하시지 않은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렇게 근거 없는 주장보다 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것은 없다. 성 꾸란 114장은 한 절을 제외하고;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

라는 구절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한 대답이 된다. 선지자 무함마드(그 분께 하나님의 평화가)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 중의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어머니가 자신의 소중한 자식을 대하는 것 보다 더욱 사랑이 깊으시고 동정심 있으시다. ” 라고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정하신 분이기도 하다. 악인들과 죄인들은 반드시 벌을 받고, 덕행이 있는 사람들은 그 분의 보상과 은혜를 받게 될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속성은 그 분의 정의의 속성에서 완전히 표명되고 있다.

하나님을 위하여 일생 동안 고통 받은 사람들과 평생을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한 사람들은 같은 대우를 주님으로부터 받을 수 없다.

그들이 같은 대우를 받는다고 기대하는 것은 내세에서 인간의 책임에 대한 바로 그 믿음을 부인하고 이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도덕적이고 덕행 있는 삶을 위한 모든 격려를 부인하는 것이다.

다음의 성 꾸란 구절은 이러한 점에 대하여 매우 명백하고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진실로 정의로운 자들을 위하여 그들의 주님 앞에 기쁨의 천국이 있도다. 이러할 진대 믿음 있는 자들을 죄지은 자들과 같이 대우하려 하시겠느냐? 너희들은 잘못 알고 있으니, 어떤 연유로 그렇게 판단하느냐? ” (성 꾸란 68장 34-36절)

이슬람은 하나님을 어떤 인간의 형상으로 특성을 묘사하거나, 그 분이 부, 권력 또는 인종에 근거하여 특정한 개인 또는 민족을 편애하고 있다고 묘사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 분께서는 인간을 동등하게 창조하셨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특성을 나타내어 오직 미덕과 신앙심을 통해서 그분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의 제 7일째에 휴식을 취하셨다거나, 하나님께서 그 분의 병사들 중 한명과 씨름을 하셨다거나,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한 질투심이 강한 음모자라거나, 또는 하나님께서 어떤 인간의 육신을 가졌다는 생각들은 이슬람의 관점으로 볼 때 신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된다.

인격적인 이름으로 하나님(Allah)을 유일하게 사용하는 것은 모든 선지자들의 계시의 정수인 하나님에 대한 이슬람 신앙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슬람은 어떠한 신 또는 인물을 하나님과 관련시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다른 죄들을 용서하여 주실 수도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결코 용서하시지 않을 대죄로 간주하고 있다.

창조주는 창조된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만일 그 분께서 창조된 것들과 같은 특성을 가진 분이라면, 그 분은 일시적이 될 것이고 따라서 창조자를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로써 그분과 같은 것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만일 창조주가 일시적이 아니라면 그 분은 영원해야만 한다.

그러나 만일 그 분이 영원하다면, 존재 될 수 없으며, 만일 그 분을 존재하도록 할 것이 없다면, 외부의 어떤 것도 그 분이 계속하여 존재하도록 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그 분이 스스로 완전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만일 그 분이 자신의 존재의 연속성을 위하여 무엇인가에 의존할 수 없다면 이러한 존재는 끝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주는 영원한 분이다:

“그 분은 처음이고 마지막 이시니 ……” (성 꾸란 57장 3절)

그 분은 완전하시고 존재하는 분이시니, 성 꾸란은 이를 AL-Qayyum(스스로 완전히 존재하심)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물을 존재하도록 한다는 관점으로만 창조주께서 창조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 분은 그것들을 보존하시고 멸하시며, 그것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의 최종적인 원인 이기도 하시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보호자이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일을 관장하시니. 땅 위의 모든 기어 다니는 피조물 조차도 그분께서 부양하시니, 진실로 그분은 모든 피조물의 양식이 있는 곳과 쉴 곳을 알고 있나니. ”

하나님의 속성들(God ’ s Attributes)

만일 창조주께서 영원하시다면, 그 분의 속성들은 역시 영원하여야 한다. 그 분은 어떠한 속성들을 잃거나 새로운 속성들을 얻지도 않으신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분의 속성들은 절대적이어야 한다. 그러한 속성들을 갖고있는 창조주가 한 분 이상일 수 있는가?

예를 들면, 절대적으로 강력한 창조주가 둘이 될 수 있을까? 잠시 생각 해보더라도 이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성 꾸란은 다음의 구절에서 이러한 논쟁을 요약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식을 두지도 않으셨으며, 그 분 곁에 다른 신을 두지도 않으셨노라. 만일 모든 신들이 자신이 창조한 것을 빼앗아 간다면, 그들 중 어떤 신은 다른 신들 위에 군림 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하나님 외에 하늘과 땅에 다른 신들이 있었다면, 그것들은(하늘과 땅) 틀림없이 멸망하였으리라. ”성 꾸란 (23장 91절)

하나님의 유일성(The Oneness of God)

성 꾸란은 모든 신들의 허위성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여준다. 우상 숭배자들에 대하여 성 꾸란은 묻는다:

“너희가 스스로 조각한 것을 숭배하거나 하나님 대신에 그 자신들 조차도 스스로 보호할 힘도 없는 그런 것들을 너의 보호자로 두겠느냐? ”

천체를 숭배하는 자들에게 성 꾸란은 아브라함(Abraham)의 이야기를 상기시키고 있다:

“밤이 그를 덮어 가렸을 때, 그는 별을 보았고, “이것이 나의 주님이로다. ”라고 말하더라. 그러나 그것이 저물었을 때, “나는 저무는 것들을 좋아하지 않노라. ”라고 그가 말하더라.

그가 달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을 때, “이것이 나의 주님이로다. ”라고 그가 말하더라. 그러나 그것이 저물었을 때, “만일 나의 주님께서 나를 인도하시지 아니 하신다면 나는 분명히 길을 잃은 자들 중에 있게 되리라. ”라고 그가 말하더라.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을 때, “이것이 나의 주님이며; 이것은 (모든 것 중) 가장 크노라. ”라고 그가 말하더라. 그러나 그것이 저물었을 때, “오 나의 백성들이여, 반드시 나는 너희들과 연관된 것을 버리노라. 나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그 분에게 나의 얼굴을 돌렸고, 순수한 신앙인으로서 나는 우상 숭배자들 중에 있지 않노라. ”(성 꾸란 6장 76-79절)

신앙인의 태도(The Believer ’ s Attitude)

무슬림이 되기 위하여(즉, 하나님께 귀의하기 위하여) 그 분의 존재가 유일한 창조주, 보호자, 부양자, 등등이라는 의식 속에서 하나님의 유일성을 믿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뒤에 Tawhid ar-Rububiyyah(주인으로서 유일성)라고 부르는 이러한 믿음은 충분하지 않다. 많은 우상 숭배자들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모든 것들을 행하실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을 무슬림들로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Tawhid ar-Rububiyyah가 되기 위하여서는 사람들은 Tawhid al-Uluhiyyah(신으로서 유일성)를 추가 하여야 하며

즉, 하나님만이 숭배 받을 자격이 있으시고 따라서 어떤 다른 것을 숭배하는 것 또한 그만두어야 하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이다.

유일하신 진리의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지식을 성취하기 위하여 인간은 그 분에 대한 믿음을 지속적으로 갖고, 어떠한 것도 자신으로 하여금 진실을 거부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믿음이 한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갔을 때, 그것은 특정한 행동의 결과를 낳는 정신적 상태를 나타낸다. 이러한 정신적인 상태와 행동을 함께 취하는 것은 진정한 믿음을 위한 증거이다.

선지자께서는 “믿음은 마음에확고히 존재하며 행위로서 입증된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한 정신적인 상태들 중에서 맨 먼저의 것은 Ibada(경배)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느끼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불신자들을 ‘Kafir ’라고 부르며, 이 말은 ‘진실을 부인하는 자 ’ 그리고 또한 ‘은혜를 모르는 자 ’를 의미한다.

신앙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부여된 혜택에 대하여 감사한다. 그러나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간에 자신의 선한 행위는 하나님의 은총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현세나 내세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벌 주시지 않도록 항상 염려하여야 한다.

따라서 신앙인은 그 분을 두려워하고 자신을 그 분에게 완전히 맡기는 것을 커다란 겸손으로 알고 그 분을 섬긴다.

그러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기억하라. 하나님은 신앙에 대한 창조적인 생명력이고 그 생명력이 없는 신앙은 시들거나 쇠퇴하여 버린다.

성 꾸란은 하나님의 속성들을 매우 빈번히 반복시킴으로써 이러한 감사의 마음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속성들의 대부분을 다음의 성 꾸란 구절들을 통하여 반복하여 언급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나니 그분은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도 알고 계시는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시니라.

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으며 그분은 왕이시고 성스러운 분이시며 평화를 주시고 안정을 수여하시는 분이시며, 가장 위대하시고 권세와 모든 위대함의 소유자 이시니,

그들이 비유하는 모든 것 위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이 있기를 ……” 성 꾸란 (59장 22절)

“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나니 그분은 살아계시고 영원하시며 모든 것을 주관하시니 졸음도 잠도 필요치 아니하시니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그분의 것이니 그분의 허락 없이 중재할 수 있으랴. 그리고 그들의 앞과 뒤에 있는 것을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 그들은 그분께서 허락한 것 이외에는 알지 못하니라. 하늘과 땅에 그분의 권좌를 펼치시어 하늘과 땅을 관장하시니, 진실로 그분은 가장 높고 위대하시다. ” 성 꾸란 (2장 255절)

“성서의 백성들이여! 너희 종교의 한계를 넘지 말며 하나님에 대하여 진실 외에는 말하지 말지어다. 실로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하나님의 사도이며, 그의 말씀은 마리아에게 내려주시니 하나님과 그분의 선지자들을 믿고, 삼위일체를 말하지 말아라. 그것을 그만 두는 것이 너희들에게 보다 이로우니라. 실로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어떻게 그분에게 아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그분께 속해 있으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하시니라. ”성 꾸란 (4장 171절)

7. 이슬람에서 예언자의 지위(Prophethood In Islam)

예언자의 지위에 대하여 유대교와 기독교와 같이 하나님에 의해 계시된 종교들에서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슬람에서 그것은 특별한 지위와 중요성을 갖고있다.

이슬람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숭고한 목적을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다. 즉,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도에 따라 고결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께서 행동하기를 원하시는 것에 대한 명백하고 실질적인 가르침들을 받을 수 없다면 어떻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신의 역할과 목적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예언자 지위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인간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여러 민족으로부터 한 사람 또는 그 이상의 선지자를 선택했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물을 수 있다. 어떻게 선지자들이 선택되었고 어떤 사람들이 이토록 위대한 영예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예언자의 지위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이다. 그러나 역사를 통하여 여러 선지자들을 조사해보면 선지자의 3가지 특성들을 알 수 있다:

1. 그는 자신의 공동체에서 가장 도덕적이고 지적인 사람이다.

이것은 선지자의 삶이 그의 추종자들에게 본보기가 되기 때문에 필수적이다.

그의 인격에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몰아 부치기 보다는 자신이 전하는 말(message)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들을 이끌어야만 한다.

메시지를 받은 후에 그는 어떠한 죄도 저지르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보통 사람들과 같이 계시에 의하여 잘못이 지적되는 약간의 작은 실수를 지속하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2. 그는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하여 기적과 같은 계시에 의하여 도움을 받게 된다.

이러한 기적들은 하나님의 권능과 허락에 의하여 부여되고, 일반적으로 자신의 백성이 뛰어나다고 인정된 분야에서 일어난다.

우리는 중요한 세계적인 종교들 즉, 유태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로부터의 3인의 선지자들이 중요한 기적들을 인용함으로써 이것을 설명할 수 있다.

모세와 같은 시대 사람들은 마법에 뛰어났다. 그래서 그의 중요한 기적은 그 당시에 이집트에 있던 최고의 마술사들을 이기는 것이었다.

예수와 같은 시대의 사람들은 훌륭한 의사들로 인정 받았었다. 따라서 예수의 기적들은 죽은 자들을 일으키고 불치의 병들을 고치는 것이었다.

선지자 무함마드(그 분께 하나님의 평화가)와 같은 시대 사람들인 아랍인들은 그들의 웅변술과 시적 재능으로 유명하였다.

그래서 무함마드의 중요한 기적은 많은 아랍의 시인들과 웅변가들 전체가 성 꾸란 자체로부터의 반복된 도전에도 불구하고 창작할 수 없었던 것이 성 꾸란이었다.

게다가 무함마드의 기적은 그것에 관해 특별한 것을 내포하고있다. 이전의 모든 기적들은 시간과 장소에 의하여 제한되었다.

즉, 그것들은 어떤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사람들에게 보여졌던 것이다. 무함마드의 기적 즉, 전 인류를 위한 영원한 기적인 성 꾸란은 그렇지 않다.

과거와 현재의 세대들이 영적 앙양 (昻揚)을 위한 그것의 독자적인 표현법과 내용면에서 그것의 기적적인 특성을 목격하였고, 미래의 세대들도 그것을 목격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여전히 조사될 수 있고 그것에 의해서 성 꾸란의 신성한 출처가 입증 될 것이다.

3. 모든 선지자들은 자신이 계시 받은 것은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명백히 밝히고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이전에 계시된 것과 자신의 이후에 계시될 수 있는 것을 확증한다.

선지자는 그가 단순히 모든 시대에 모든 사람들의 유일하신 진리의 하나님에 의하여 자신에게 맡겨진 계시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계시는 본질적으로 하나이고 같은 목적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그의 이전에 계시되었던 것 또는 그의 이후에 올 수 있는 것으로부터 빗나갈 수 없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도를 인류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가 왜 창조되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사후에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후에 어떤 삶이 존재할까?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할까?

바꾸어 말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의 행위들에 대한 어떠한 보상 또는 처벌이 있을까?

이러한 것들과 하나님, 천사들, 천국, 지옥, 등등에 관한 많은 다른 질문들은 조물주이시며 보이지 않는 것을 아시는 분으로부터의 직접적인 계시가 없는 한 답변 될 수 없다.

그러한 답변들은 확실해야 하고 우리가 믿고 존경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제시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선지자들이 도덕적인 행위와 지적인 능력 면에서 그들의 사회에서 선택된 이유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선지자들 중 어떤 분들을 비방하는 성경의 내용들은 무슬림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

예를 들면, 롯(Lot)이 술에 취하여 자신의 딸들과 간음을 저질렀다고 전해지는 경우 또는 다윗(David)이 자신의 지휘관들 중에 한 사람을 그의 아내와 결혼하기 위하여 전장터로 파견하였다는 것이다.

선지자들은 무슬림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들이 보여주는 것보다 더욱 위대하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이슬람의 견해로는 사실이 아니다.

선지자들은 또한 하나님의 기적으로 격려 받고 계시의 연속성을 확언하도록 명령 받는다.

인류에게 보내진 계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신에 대한 명확한 개념: 하나님의 속성들, 하나님의 창조 그리고 하나님께 속하는 것과 속 할 수 없는 것

2) 보이지 않는 세계, 천사들, 진[(jinn : spirits : 영마 (靈魔))], 천국과 지옥에 대한 명확한 이해

3)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로부터 무엇을 원하시고 하나님께 복종하거나 불복종한 것에 대한 보상 또는 처벌이 무엇인가?

4)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사회를 이끄는 방법은? 즉, 명확한 명령과 법이 정확하고 정직하게 적용되었을 때 행복하고 이상적인 사회가 도래한다.

선지자들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은 위에서 설명한 것으로 명확해진다.

심지어 과학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초자연적인 세계에 대한 유일하고 확실한 정보의 출처는 계시이다. 인도라는 것은 과학이나 또는 신비적인 경험으로부터 얻어질 수 없다.

첫번째는 너무나 물질적이고 제한되어 있으며, 두 번째는 너무나 주관적이고 빈번히 오해하기 쉽다.

지금 당장 한 사람이 물어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선지자들을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보내셨는가? 우리는 확실히 알지 못한다. 어떤 무슬림 학자들은 24만 명의 선지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에게 한 사람의 선지자를(또는 그 이상) 보내셨다고 성 꾸란에 명확히 언급된 것만을 확신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하시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는 결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근본 방침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성 꾸란은 25명의 선지자들의 이름을 언급하고 선지자 무함마드(그 분께 하나님의 평화가)에게 언급되지 않은 다른 선지자들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선지자들 25명은 방주의 예언자인 노아(Noah), 아브라함(Abraham), 모세(Moses), 예수(Jesus) 그리고 무함마드(Muhammad)를 (그 분들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포함하고 있다.

이 다섯분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분들이다. 이분들을 ‘신념이 강한(the resolute) ’ 예언자들이라고 부른다.

예언자의 지위에 대한 이슬람의 믿음에 있어 탁월한 면은 예외 없이 하나님의 모든 선지자들을 믿고 존경하는 것이다.

똑같은 유일한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선지자들이 왔고 하나님께 인류를 인도하시는 같은 목적을 갖고 있다, 따라서, 모든 선지자들에 대한 믿음은 의무적이고 논리적이다.

일부 선지자들을 받아들이고 다른 분들을 거부하는 것은 명백히 예언자들의 역할 또는 인종적인 편견에 근거한 오해를 전제 (前提)로 한다.

무슬림들은 하나님의 모든 선지자들에 대한 믿음을 하나의 신조로 간주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와 무함마드를 거부하는 유대인들;

그리고 무함마드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은 실제로 그들이 모세의 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모세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 이슬람은 그들 모두를 인류를 인도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들로서 받아들인다.

선지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정하게 변경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성 꾸란은 하나님의 모든 선지자들에 대한 믿음을 무슬림들에게 아래와 같이 명령 하였다:

말하라: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에게 계시된 것과, 아브라함, 이스마일, 이삭, 야곱 그리고 그 자손들에게 계시된 것을 믿으며, 모세와 예수에게 계시된 것을 믿고,

그들의 주님으로부터 (모든) 선지자들에게 계시된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차별하지 않으며,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복종합니다.”

성 꾸란은 이것이 사실이고 공정한 믿음이라는 것을 무슬림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다음의 구절에서 계속되고 있다. 만일 민족이 다르더라도 신앙이 같다면 그들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단지 그들 자신의 일시적인 생각과 편견을 추종하고 있으며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알게 된다:

“ 그래서 만일 그들이 너희가 믿는 것처럼 믿는 다면 그들은 진정 올바른 길을 가고 있나니,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국 분열될 것이나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주시니, 진실로 그분은 모든 것을 듣고 아시는 분이시니라.” 성 꾸란 (2장 137절)

분명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예언자의 지위와 관련된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이 있다.

이러한 사항들은 대단히 오해 받고있는 선지자들로서 예수와 무함마드(그 분께 하나님의 평화가)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예수 (그 분께 하나님의 평화가)에 대한 성 꾸란의 해석은 그의 ‘신성(神性)’과 ‘하나님의 자식의 신분’에 대한 개념을 단호히 거부하지만 하나님의 위대하신 선지자들 중의 한 분으로서 그를 나타내고 있다.

성 꾸란은 아버지 없는 예수의 탄생이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명백히 하고 있으며, 성 꾸란은 이점에 대하여 아담(Adam)이 하나님에 의하여 아버지와 어머니 없이 창조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예수의 모습은 아담의 것과 같으며,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 다음 그에게 말씀하시어: “있어라” 하니 그가 있었노라.” 성 꾸란 (3장 59절)

다른 선지자들과 같이 예수(그 분께 하나님의 평화가) 역시 기적들을 행하였다.

예를 들어, 그는 죽은 자들을 일으켜 세우고 맹인들과 나병 환자들을 치료하였지만, 이러한 기적들을 보일 때 그는 항상 그것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명백히 하였다.

실제로 예수의 인격과 임무에 관하여 잘못된 생각들은 그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설교한 하나님의 계시는 그가 생존해 있었을 때 기록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약 100년 후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성 꾸란에 의하면 그는 이스라엘(Israel)의 자손에게 보내졌다.

그는 모세에게 계시된 토라(Taurat)의 유효성을 입증하였고 그는 또한 그의 이후에 나타날 마지막 선지자의 소식을 가져왔다.

“그리고 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오 이스라엘의 자손들아! 나는 나의 이전에 온 토라, 그리고 나의 이후에 올 아흐마드라는 이름을 가진 선지자의 희소식을 확인하는, 너희들에게 보내진 하나님의 선지자이니라.”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라.” 성 꾸란 (61장 6절)

주 (註): 아흐마드(Ahmad)는 “찬미 받는 자(the praise one)”라는 의미로서 무함마드의 또 다른 이름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유태인들은 예수의 성스러운 임무를 거부하였다. 그들은 그에 대한 음모를 꾸몄으며,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성 꾸란은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고, 그들은 그를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박지 못하였으며 그는 하나님에게 부름 받아 승천했다고 말한다.

예수는 돌아올 것이고 모든 기독교인들과 유태인들은 그들이 죽기 전에 이 사실에 관하여 믿을 것이라고 의미하는 내용이 성 꾸란의 구절에 있다.

이것은 역시 선지자 무함마드(그 분께 하나님의 평화가)의 진정한 말씀에 의하여 입증된다.

하나님의 마지막 선지자이신 무함마드(그 분께 하나님의 평화가)께서는 서기 6세기에 아라비아에서 출생하셨다.

40세가 될 때까지 메카의 사람들은 그를 단지 훌륭한 성품과 수양을 쌓은 예절을 갖춘 사람으로 알았고, 그를 알-아민(AL-AMEEN : 신뢰할 수 있는 자)이라 불렀다.

그는 또한 자신이 곧 선지자와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자가 될 것임을 알지 못하였다.

하지만 계시를 받은 후 그는 메카의 우상 숭배자들에게 유일하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자신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받아드릴 것을 촉구하였다.

그가 받은 계시는 그의 생전에 동료들의 기억 속에 보존되었고, 이것은 또한 대추야자 잎들, 가죽, 등등의 조각들에 완벽하게 기록되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성 꾸란은 그에게 계시된 것과 동일한 것으로 전승되었고, 하나님께서 보전을 보장하셨듯이 한 마디도 변질되지 않았다.

이 성 꾸란은 모든 시대에 걸쳐 인류를 위한 지침서이고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마지막 선지자임을 언급하고 있다.

8. 사후(死後) 의 삶(Life After Death)

과학자는 단지 판단 자료의 분류와 분석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사후의 삶이 존재하는지 아닌지의 문제는 과학의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 한다.

더욱이 인간은 지난 수세기 동안 과학이라는 현대적인 관념으로 연구와 조사에 몰두해왔으나, 인간은 아득한 옛날부터 사후의 삶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모든 선지자들은 그들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숭배하고 사후의 삶을 믿도록 명하였다.

선지자들은 사후의 삶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확고 했기 때문에 심지어 그것에 대한 약간의 의심조차도 하나님을 부정하고 모든 다른 믿음들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느님의 모든 선지자들이 그들 사이에 수천 년이란 기간의 간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후의 삶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그토록 확신을 같고 한결 같이 다루었다는 그 사실은 그들 모두에 의하여 공포되었듯이 사후의 삶에 대한 지식의 출처는 같았다는 것, 즉, 신의 계시였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큰 문제는 그들의 백성들이 이사실에 대하여 불신 하였기 대문에 그들로부터 많은 이의를 제기 받았다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들은 아주 많은 진실한 추종자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면 무엇이 그 추종자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공통체로부터 완전히 소외되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 선조들이 갖고 있던 확고한 믿음, 전통 그리고 관습을 버리고 새로운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하였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그 대답은 간단하다: 그들은 그들의 심적 능력으로 진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지각 (知覺) 을 통하여 진실을 깨달았는가?

그렇지 않다, 사후의 삶에 대한 지각적인 경험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느님은 지각 의식 이외에 이성적, 심미적 그리고 도덕적인 의식을 또한 사람에게 부여하셨다.

지각의 자료를 통하여 입증되어질 수 없는 사실들에 관하여 인간을 인도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식이다.

그것이야말로 하느님의 모든 선지자들이 사후의 삶이 인간의 심미적, 도덕적 그리고 이성적인 의식에 호소하는 이유이다.

예를 들면 메카(Makkah)의 우상 숭배자들이 사후의 삶의 대한 가능성조차도 부정했을 때 성 꾸란은 매우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논증을 펼쳐나감으로써 그들의 논리의 결점이 드러나게 하였다:

인간은 하나님과 유사한 것들을 지어내며 그가 창조된 것을 잊어 버리고 말하기를, “바짝 말라버리고 부패한 이 뼈에 누가 생명을 부여 하느냐? ” 라고 하더라. 말하라, 하나님께서 최초에 그들을 창조 하신 생명을 그들에게 주리라! 그분은 모든 창조에 관하여 알고 계시기 때문 이니라. 그분은 너희들을 위하여 푸른 나무로부터 불을 만드시니 너희들이 그것으로부터 불을 피우리라.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그분이 그와 흡사한 일을 할 수 없단 말이냐? ” 결코 아니니, 왜냐하면 그분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지고한 창조주 이시기 때문 이니라 ! (성 꾸란36장 78-81절)

또 다른 경우에서 성 꾸란은 불신자들이 사후의 삶에 대한 부정에 논리적으로 올바른 어떠한 근거를 갖고있지 않다는 것을 매우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그들의 사후의 삶에 대한 부정은 억측에 근거를 두고있다:

그리고 그들은 “현세의 삶 이외에 우리에게는 어떠한 것도 없으며, 우리는 죽고 우리는 살며 시간 외에는 어떠한 것도 우리를 멸하지 못하느니라 ” 라고 말하니 그들은 그것에 대하여 어떠한 것도 알지 못하며 단지 추측할 뿐이라.

하나님의 명확한 말씀이 그들에게 전해 졌을 때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그것을 믿는 사람들 이라면 우리의 선조들을 데려오라! ” 라고 주장하더라.(45장 24-25절)

확실히 하나님은 모든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며 모든 사태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계획을 갖고 계신다.

모든 우주가 파괴되고 다시금 죽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하여 부활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은 결코 끝나지 않을 삶의 시작이고, 그날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선행이나 악행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사후의 삶의 필요성에 관한 성 꾸란의 설명은 인간의 도덕적인 의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만약에 사후의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에 대한 그 믿음은 부적절한 것이 되거나, 또는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그 하나님은 한때 인간을 창조하였으나 인간의 운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하나님이 될 것이다. 확실히 하나님은 공정하시다.

많은 사람을 죽이고, 사회에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며, 그들의 일시적인 기분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일 따위의 셀 수 없이 많은 범죄들을 저지르는 폭군들에게 하나님은 벌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매우 짧은 수명을 갖고 있고 이러한 물질세계 역시 영원한 것이 아니어서, 인간들의 악행이나 훌륭한 행동에 동등한 처벌이나 보상이 이 세상에서는 충분하지 않다.

성 꾸란은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오고 하느님은 인간 각자의 행위에 대한 기록에 따라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결정하실 것이라고 매우 단호하게 언급하고 있다 :

불신자들은 “그 시간은 결코 우리에게 오지않을 것이라 ”고 말하니:

말하라, “그렇지 않느니라! 주님을 두고 맹세하니 틀림없이 그것은 너희에게 다가올 것이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 계시는 그 분에 의하여 ……”(34장 3절)

부활의 날은 정의와 자비에 대한 하나님의 속성이 완전히 표명되는 날이 될 것이다.

영원한 천국의 기쁨이 그들을 기다려 왔다는 믿음으로 현세의 삶에서 그분을 위하여 고통 받았던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실 것이다.

그러나 다가올 삶을 전혀 개의치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악용한 사람들은 가장 비참한 상태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날은 인간들 행위에 대한 선악을 구분하며 이에 관하여 성 꾸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이들 둘이) 서로 같으냐? 하나는 우리가 훌륭한 약속을 하였고 그 약속의 이행에 다가가고 있는 자이니라,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주었으나 심판의 날 (벌받기 위해) 불려 세워질 자들 중에 있게 될 자이니라. (28장 61절)

또한 성 꾸란은 현세의 삶이 사후의 영원한 삶을 위한 준비임을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부인하는 자들은 그들의 열정과 욕구의 노예가 되어, 고결하며 하나님을 인식하는 사람들을 조롱한다.

그런 사람들은 단지 그들의 임종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이 세상에서 더 이상의 기회가 부여되기를 간구하지만 결국 허사가 된다.

그들의 임종 시 비참한 상태, 최후의 심판 일의 공포 그리고 진실한 신자들에게 보장된 영원한 천국의 기쁨이 다음의 성 꾸란 구절에 매우 훌륭하게 언급되어 있다 :

죽음이 그들 중의 한 사람에게 이르렀을 때, “오! 나의 주님이시여, 제가 게을리 하였던 정의로운 일들을 행할 수 있도록 돌려보내 주소서, ” 라고 그가 말하니, “불가하노라 ! ” 진실로 그것은 그가 애원하는 말에 불과하니 그에게는 부활의 날까지 고통만이 있을 뿐이다. 성 꾸란 (23장 99-100절)

사후의 삶에 대한 믿음은 내세에서의 구원을 보장하여 줄 뿐만 아니라 각 개인들이 행동하는데 있어 가장 책임 있고 성실하게 행함으로써 이세상을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게 만들어 준다.

그들이 사후의 삶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던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Arabia) 사회는 도박, 술, 부족간의 불화, 약탈 그리고 살육이 그들의 주된 특성이었다.

그러나 유일신과 사후의 삶에 대한 믿음을 받아들이게 되자 곧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수양 된 민족이 되었다.

자신들의 악습을 버리고 필요 시 서로를 도왔으며 그들의 모든 논쟁들을 정의와 평등의 기초 아래에서 해결하였다.

마찬가지로 사후의 삶에 대한 부정은 내세에서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그것 자체의 중요성을 갖고 있다.

한 민족이 전체적으로 그것을 부정할 때 모든 종류의 해악과 부패가 그 사회에 만연하게 되고 종국에 가서 그 국민은 멸망한다.

성 꾸란은 아드 싸무드(Aad Thamud)와 파라오(the Pharaoh)의 끔찍한 종말을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싸무드와 아드의 민족들은 심판의 날을 부정하니, 싸무드 민족은 무시무시한 괴성에 의하여 멸망하였고 아드 민족은 사나운 폭풍에 의하여 멸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7일 밤 8일 낮 동안 계속해서 벌하시니, 너희들은 그들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알게 되리라, 대추야자나무의 밑둥이 처참히 쓰러지듯, 너희들은 그들 중에 살아남은 누구를 볼 수 있겠느냐? …….성 꾸란(69장 4-8)

따라서 사후의 삶을 믿는 매우 설득력이 있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모든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그들의 백성에게 사후의 삶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믿도록 촉구하였다.

둘째, 인간 사회가 이러한 믿음의 기초 위에 건설 될 때, 그것은 사회적이고 도덕적이며 해악이 없는 가장 이상적이고 평화로운 사회가 되었다.

셋째, 선지자의 반복적인 경고에도 불구하고 한 집단에 의하여 진리가 거부될 때 그 집단 전체가 현세에서도 하나님에 의하여 벌받았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넷째, 인간의 도덕적, 심미적 그리고 이성적인 능력은 내세의 가능성을 확인해 주고 있다.

다섯째, 정의와 자비의 하나님의 속성은 만일 사후에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9. 이슬람에서 인간의 권리(Human Rights In Islam)

하나님께서는 절대자이시고 우주의 유일한 주인이시기 때문에, 인류의 주님이시고, 보호자이시며 부양자이시니, 그분은 자애로우심은 모든 존재들을 소중히 보존하신다.

그 분이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명예를 주시고 그 분 자신의 영혼을 불어넣으셨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은 그분에게 속하게 되며 그분을 통하여 목적을 추구할 수 있다.

비록 그분의 피조물 들이 피부색과 민족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본질적으로 그분으로 부터 비롯된 하나이며 실제적인 차이가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므로 인간은 서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며 모두가 가장 자비로우신 주님에 대한 명예롭고 충실한 종으로서 서로서로 형제애를 나누는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

이렇게 신성한 분위기 속에서 정의된 이슬람은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한 중심이 확실하며, 인류의 평등 성과 형제애의 개념을 필연적으로 가르친다.

이슬람 국가가 지구상 어디든지 세워질 수 있으나 이슬람은 인간의 권리 또는 특권을 그 국가 자체의 지리적인 범위에 제한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인류를 위하여 어떠한 보편적인 권리를 총괄하며 이것은 한 개인이 그 국가와의 관계가 좋거나 그렇지 아니하거나, 또는 평화 상태이거나 전시이거나, 모든 상황 아래서 반드시 준수되고 존중되어야만 한다. 성 꾸란은 이에 관하여 명백하게 언급하고 있다:

“오 믿는 자들이여! 공정한 거래에 대한 증인으로서, 하나님을 위하여 굳게 인내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증오가 너희를 잘못으로 유도할 수 있으니 정의로부터 이탈하게 하지 말아라. 공정 하라: 그것은 신앙심에 보다 가까이 있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실로 하나님은 네가 행하는 모든 것들을 잘 알고 계시느니라.” (성 꾸란 5장 8절)

인간의 피는 어떠한 경우에서도 신성한 것이고 의로운 일로 인정되지 않는 한 흘려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만일 누구를 막론하고 의롭다고 인정되지 않는 살인을 행하였을 경우 이슬람은 이를 신성을 모독으로 간주하고 성 꾸란에서는 이를 인류 전체를 죽이는 것과 동일시 하고 있다:

“누구든 사람을 살해한 것에 대한 정당한 보복이 아니거나 지상에서 해악을 퍼뜨린 것이 아닐 경우 사람을 살해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죽이는 것과 같으니……”.(성 꾸란 5장 32절)

그리고 이슬람은 여성들과 노약자들, 어린이들, 부상 당한 사람을 억압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여성들의 명예와 순결은 모든 상황에서 존중되어야 한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음식이 제공되어야 하고, 벌거벗은 사람에게는 옷이 제공되어야 하며, 부상당한 사람들 또는 병든 사람들은 그들이 이슬람 공동체에 속하든 적들 중에서 온 사람이든 간에 상관없이 보호 받아야 한다.

우리가 이슬람에서 인권을 이야기 할 때 이러한 권리들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셨으며 왕이나 입법 기관에 의하여 부여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왕들이나 어떠한 입법 기관에 의하여 부여된 권리들은 그것들이 주어진 것과 같은 방법으로 역시 철회될 수 있다. 독재자들에 의하여 받아들여 지고 인정된 권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다.

그들은 권리들을 그들이 하고 싶을 때 줄 수 있고 그들이 원할 때 철회할 수 있으며 마음이 내킬 때 공공연히 권리들을 침해한다.

그러나 이슬람에서 인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어떠한 입법부 또는 지상의 어떤 정부도 하나님께서 주신 권리들에 대해 어떠한 수정 또는 변경을 할 수 있는 권리나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어느 누구도 그것들을 폐지 하거나 철회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인권들은 보여주거나 전시를 위하여 종이 위에 쓰여져 제공된 기본적인 인권들이 아니며 보여주는 것이 끝났을 때 실제의 삶에서 부인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신성함이 없는 철학적인 개념들도 아니다.

국제연합의 헌장과 선언서, 결의안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권리들과 비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자는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없으며 후자는 모든 신앙인들에게 적용된다.

인권은 이슬람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자신이 신앙인라고 주장하는 모든 무슬림들과 관리자들은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따른다.

만일 그들이 그것을 시행하지 않고 하나님에 의하여 보장된 권리들을 부정하거나 수정하고 변경, 또는 말로만 동의하며 실질적으로 모독하는 경우, 성 꾸란의 평결은 명백하고 명료하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으로 판결하지 못하는 자는 누구라도 불신자들 이니.”(성 꾸란 5장 44절)

이슬람 국가에서의 인권

1. 생명과 재산의 보호: 선지자께서 고별순례 때에 행하신 설교에
“너희들의 생명과 재산은 너희들이 부활의 날 주님을 만날 때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허락되지 않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선지자께서 딤미(dhimmi : 무슬림 국가의 비 무슬림-계약 하에 있는 자)에 대하여 역시 말씀하셨다:

“딤미를 죽이는 자는 천국의 향기조차도 맡지 못할 것이니라.”

2. 명예의 보호: 성 꾸란은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믿는 자들이여,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비웃지 않게 하라.

서로 비방하지 말라. 별명을 사용하여 모욕하지 말아라.

서로 뒤에서 중상하거나 헐뜯지 말아라.”

(성 꾸란 49장 11-12절)

3. 사생활의 존엄과 보호: 성 꾸란은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서로 감시하지 말지어다.” (성 구란 49장 12절)

“너희들이 주인의 허락을 받을 때까지 어떤 가정에도 들어가지 말아라.” (성 꾸란 24장 27절)

4. 개인의 자유에 대한 보호 : 이슬람은 어떠한 국민도 그의 죄가 공개된 법정에서 입증되지 않는 한 투옥될 수 없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단지 의심에 근거하여 사람을 체포하고 적절한 법적 절차와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그를 투옥하는 것은 이슬람에서는 허용할 수 없다.

5. 폭정에 저항 할 수 있는 권리: 이슬람이 인간에게 부여한 권리 중에는 정부의 폭정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성 꾸란은 이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

“하나님께서는 누군가에 의하여 고통을 입은 것이 아니라면 사악한 언사가 들어 남을 원하지 않으시니라.”

(성 꾸란 4장 148절)

이전에 논의 되었던 바와 같이 이슬람에서는 모든 힘과 권한이 하나님께 속하고 사람에게는 위임된 권력이 있을 뿐이다.

위임된 권력을 부여 받은 자는 국민을 위하여 정당한 권력을 행사하도록 요청 받게 될 때 그들의 국민 앞에 위엄을 고수할수 있다. 아부 바크르(Abu Bakr)는 이에 관하여 그의 첫번째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옳을 때 나에게 협조하라, 그러나 내가 실수를 저지를 때는 나를 바로 잡아 주고, 내가 하나님과 그의 선지자의 율법들을 따르는 한, 나에게 복종하라, 그러나 내가 이를 벗어날 때에는 나를 외면하라.”

6. 표현의 자유: 이슬람은 모든 국민들에게 해악과 부정이 아닌 미덕과 진실의 전달을 사용하는 전제 하에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주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슬람의 개념은 서구에서 보급된 개념보다 훨씬 우월하다. 어떠한 상황 에서도 이슬람은 해악과 부정이 유포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어느 누구에게도 비평이란 이름을 빌어 매도하거나 모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권리를 주지 않는다.

어떤 특정한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명령이 그에게 계시되었는지 여부를 성스러운 선지자께 문의하는 것이 무슬림들의 관례였다.

만약에 선지자께서 자신이 어떠한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것이 없었다고 말하면 무슬림들은 그 문제에 대하여 자유롭게 그들의 의견을 표현하였다.

7. 결사의 자유: 이슬람은 또한 사람들에게 결사의 자유 그리고 정당과 조직의 구성에 대한 자유의 권리를 부여하였다. 이 권리는 확실한 일반적인 규칙을 조건으로 한다.

8. 양심과 확신의 자유: 이슬람은 명령하고 있다:

“종교에는 강요가 있을 수 없느니라.” (성 꾸란 2장 256절)

이에 반하여 전체주의는 완전히 개인들로 부터 그들의 자유를 박탈한다. 국가의 권한을 부당하게 높이는 것은 일종의 노예 상태와 맹종을 요구한다.

한때 노예 상태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의미하였다. 현재 그러한 형태의 노예제도는 법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전체주의 사회는 개인들에 대한 유사한 형태의 통제를 강요한다.

9. 종교적 사상의 보호: 확신의 자유 그리고 양심의 자유와 함께 개인의 종교적인 생각이 존중을 받을 것이고 자신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것은 어느 것도 말하거나 행해지지 않을 권한을 이슬람은 개인들에게 주었다.

10. 임의의 투옥으로부터의 보호: 이슬람은 또한 타인의 범죄로 인해서 체포되거나 투옥되지 않을 개인의 권리를 인정한다. 성 꾸란은 이러한 원칙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짐진 사람은 누구도 다른 사람의 짐을 질 수 없노라.” (성 꾸란 35장 18절)

11. 기본생존권에 대한 권리: 이슬람은 도움과 원조이 제공되어져야 할 빈곤한 사람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재산 중에서 가난한 자들과 필요로 하지만 요구하지 못한 자들에게 인정된 권리가 있느니라.” (성 꾸란 51장 19절)

12. 법 앞에서의 평등: 이슬람은 국민들에게 법적인 견지에서 절대적이고 완전한 평등의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13. 법을 초월 할 수 없는 통치자들: 높은 귀족 가문의 한 여성이 절도와 관련되어 체포되었었다. 그 사건을 선지자에게 가져와서 그녀가 절도에 대한 처벌로부터 용서 받을 수 있도록 권고되었다. 선지자께서 답변하셨다.

“너희들 이전의 민족들은 보통 사람들의 범죄에 대해 처벌하고 고귀한 사람들의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하여 멸망하였다.

나의 생명을 관장하시는 하나님께 맹세코, 무함마드의 딸인 파티마(Fatima)가 이 범죄를 저질렀다 할지라도 나는 그녀의 손을 절단하였을 것이다.”

14.국사(國事)에 참여할 권리:

“그리고 그들의 업무를 그들 사이에서 협의를 통하여 처리하며…”(성 꾸란 42장 38절)

슈라(shura) 또는 입법부는 정부의 행정 수반과 의회의 구성원들이 국민의 자유롭고 독립된 선택에 의하여 선출되어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뜻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끝으로 이슬람은 특정한 법률적인 보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혈연에 의한 친족 관계, 인종적 우월, 언어적인 오만 그리고 경제적인 특권에 의하여 조장된 단순한 관계를 넘을 수 있도록 인간을 이끌어 냄으로써 위에서 언급한 인권들과 다른 많은 것들을 성취하기 위하여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이슬람은 인간의 내적인 장점으로 형제애의 이상을 실현 할 수 있는 단계로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인간을 이끌고 있다.

Leave a reply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